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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ipsyviolet Mar 02. 2023

과거의 망령 3.

일지 20230302

Signs of hallucinations.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여러 복합적 요인들 때문에 잠에 쉽게 들지 못했다. 그런데 그것보다 훨씬 더 큰 문제가 있었다. 원인은 아직도 모르겠다. 어쩌면 나의 방어기제가 기억을 차단시켜서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선명한 사실은 하나 있다. 나는 매일밤이 공포의 시간이었고 밤이 두려웠다는 것.


사실 아직도 밤에 편히 잠을 청하는 것은 어렵다. 약물의 보조를 받아야 겨우 숙면을 취할 수 있을 정도. 컨디션과 정서적 상태에 따라 달라지지만, 내가 편안히 수면을 취하는 것은 영원히 풀리지 않을 난제처럼 해결책을 찾기가 영 쉽지 않다. 다시 과거로 돌아가서, 내가 매일밤이 공포의 시간이었다고 했던 이유는 바로 정말 말 그대로 공포에 사로 잡혔던 시간이기 때문이다. 식은땀을 흘리고, 오한을 느끼며, 몸이 소스라치게 떨리고 굳어가는 것을 매일 밤 경험해야 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너무 무서웠다. 옆에서 자고 있는 형과 엄마에게 도움을 청해도 별 다른 도움을 받지는 못했다. 나는 그렇게 항상 혼자서 두 눈을 꾹 감고 공포의 시간이 흘러가길 바랄 뿐이었다. 이윽고 매일 밤 탈진한 채로 체력이 방전되어 잠에 겨우 드는 상황을 되풀이했다. 그런 상황이 오랜 기간 지속되다 보니, 당연히 체력적으로도 병약했고 잔병치레가 상당히 많았다. 그리고 성장도 덩달아 더딘 느낌이 없지 않아 있었다, 물론 그 부분은 엄마가 그다지 우리의 균형 잡힌 식단에 크게 관심이 없었기에 영양을 신경 써서 먹이지 않았던 것도 이유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때로는 그래도 나름의 모성애가 발동했는지 가끔 챙겨주곤 했는데, 워낙 괴랄한 성격 탓에 우리가 조금이라도 깨작인다 싶으면 불같이 화를 내고 밥을 빼앗아갔다. 난 그래서 가리는 음식이 별로 없다. 배고픔을 달래는 게 우선이었으니 차려준 음식은 모조리 먹었다. 우리 형은 좀 까다로워서 많이 혼났는데, 그런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혼나기 싫어서 먹기 싫은 반찬도 억지로 먹었다. 어떤 벌을 받았는지는 너무 신박하고 기상천외한 것들이 많아서 다음에 기회가 되면 써보도록 하겠다. 자, 그렇게 저녁식사를 마치고 다시 밤이 찾아왔다. 나는 잠에 들기 싫었다, 아니 밤이 찾아오는 게 무서웠다. 새벽까지 만화를 보고 영화도 보고 억지로 버텨도 봤다. 하지만 결국 수면욕을 이길 수는 없었고, 엄마도 제발 자라는 핀잔을 주었기에 잠을 청하러 가면, 몸이 너무 피곤해서 지친 탓에 쉽게 잠에 든다. 그런데 문제는 그다음이다. 잠에 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공포감에 휩싸인 채로 잠에서 깨버리고 다시 잠들지 못했다. 우리 집은 아빠와 엄마가 각방을 쓰셨는데, 엄마와 우리 형제가 자는 곳은 커튼이 없었다. 그래서 발코니가 훤히 보였고 새벽빛을 받은 발코니는 음산하기 그지없었다. 내가 쳐다보기 싫어도 그쪽이 시야에 자꾸만 들어왔다. 근데 나는 그 시간만 되면 환시와 환청을 동시에 경험했다. 그렇다, 그것이 나에게 공포를 심어주는 존재였다. 때로는 악마의 모습으로, 때로는 귀신의 모습으로. 그리고 어떤 때는 드라큘라의 모습 등 온갖 괴상한 모습으로 탈바꿈하며 나에게 알 수 없는 말을 자꾸만 속삭였다. 나는 너무 겁에 질려 엄마를 깨워도 보고 형을 불러봐도 이미 깊은 잠에 빠진 엄마는 내가 악몽을 꿨나 싶어서 등을 잠시 토닥이고 다시 잠에 빠지셨다. 나에겐 현실세계에서 지금 이 순간 벌어지고 있는 일인데, 그다지 대수롭지 않았던 모양이다. 두 눈을 감고 두 귀를 막아도 느껴지는 그 존재 때문에 어느새 내 몸은 식은땀으로 젖어만 갔다. 사실 이게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이면 어느 정도 심각성을 인지할 법도 한데, 그걸 바란다는 것 자체가 사실 나에겐 큰 사치였다. 무관심을 우리 가족의 키워드로 정의할 수 있을 정도니까 말이다.


그렇게 고통의 세월을 보내다 나의 진심 어린 호소가 드디어 통했던 탓일까? 어느 날 우리 방에 침대가 생겼고 커튼도 생겼다. 그리고 우리 형제 둘만 자는 침실로 바뀌게 되었다. 우리 형제는 당시엔 아주 끈끈했다, 당시 서로의 아픔을 몸소 공유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으니까. 가끔은 서로를 부둥켜안고 울면서 잠에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커튼이 생기고 환경이 변하고부터 차츰 나를 괴롭히던 악마가 서서히 종적을 감췄다. 근데 그 악마는 이미 나에게 소정의 목적을 달성해서 사라진 것일까? 그 악마는 불면증을 자신의 표식처럼 내 머릿속에 강렬히 새겨놓은 상태였다. 오늘도 나는 잠에 들기 위해 약을 먹는다. 언제쯤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난 보조제가 아닌 치료제가 필요하다. 아니, 나를 치유해 줄 누군가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한 것 같다.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오직 음악만이 유일한 치유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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