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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ipsyviolet Feb 26. 2023

현재, 그리고 미래의 나 2.

일지 20230225

Bipolarity collapse.

최근까지 이런저런 안 좋은 일 때문에 정신적으로 상당히 고통스러웠다. 아홉수를 믿지는 않았지만 내가 처한 상황이 아홉수를 인정하게 만들었고, 그 여파는 여전히 회복되지 못한 것 같다. 주기적으로 며칠은 기분이 날아갈 듯 좋다가도, 이내 깊은 심연으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끌리곤 하였다. 이런 불안정한 패턴의 반복이 올해 초부터 지속되어 왔다.


사실 나는 살아온 대부분의 세월을 극심한 우울증과 함께 보냈고, 치료는 여전히 진행 중에 있다. 문득 돌이켜보면 나의 유년기 때에는 정신마저 분열했던 위기의 시기였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의 나는 이런 불안정한 시기에도 매일 웃고 지낼 수 있을 만큼 당시엔 상당히 위태로웠다. 극심한 트라우마로 인한 정신적 충격에서 헤어 나올 수 없었고, 치유의 시간을 보낼 틈도 없이 매일같이 찾아오는 지독한 외로움 속에 홀로 방치된 나 자신을 인정할 수 없었다. 이 모든 게 절대로 현실일 수가 없다고, 이렇게 비참함 속에 살아가는 이유는 내가 지금 긴 꿈 속에 빠져있어서라고 생각했었다. 지금 시점에서 생각해 보면, 당시엔 현실을 올바르게 분간하지 못했고 그로 인해 무모한 행동들도 많이 했던 것 같다. 왜냐하면, 내가 경험하고 있는 모든 것은 꿈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최근 아버지께서 해외여행을 가시는 바람에 잠시 본가로 들르게 되었다. 아버지께서 키우시는 고양이를 우리 형제가 교대로 돌봐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고양이를 키우는 집사이지만, 그 고양이는 좀처럼 좋아할 수가 없다. 그 녀석 때문에 약 한 달을 병원신세를 지기도 했었고, 지나친 공격성, 그리고 그 녀석을 그냥 쳐다만 봤을 뿐인데 그 행위만으로도 심기를 상당히 건드리는 것인지, 만난 지 10초 만에 고양이 세계관에서의 매우 심한 욕설인 하악질을 통상적으로 무려 세 번 이상 들을 수 있다. 결정적으로, 그 녀석을 보고 있으면 어린 시절의 내 모습과 거의 흡사할 정도로 많은 부분이 불안정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 고양이를 키우는 집사 입장에서 아버지에게, 사실은 그 고양이를 위해, 이런저런 진심 어린 조언과 도움을 드리고는 했지만 역시 인간은 바뀔 수 없는 것인지 좀처럼 변함이 없다. 아니 사실 아버지는 우리의 얘기를 아예 듣지를 않으시니까 기억을 못 하시는 게 맞다. 아니, 기억을 안 한다고 하는 게 맞는 것일까? 그저 언제나 그랬듯이 자신의 생각만이 정답인 사람이었으니까 말이다. 그 흔한 사냥놀이, 주기적인 화장실 교체, 모래 전체 갈이, 청소, 용품 교체, 식기류 관리 등등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 것이 없다. 내가 바라볼 때 그저 그 녀석을 자신의 뒤틀린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 정도로 생각하는 느낌. 참으로 불쌍한 녀석이다. 어린 시절의 나를 방치하며 키웠던 것처럼 소름 돋게 똑같은 수순을 밟고 있으니. 늘 한결같으신 모습이 그저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그렇게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방치당하고, 3D의 세상을 살아가는 고양이의 삶의 질을 올려줄 흔한 캣타워조차도 없는 좁디좁은 곳에 갇혀버린 그 녀석은 본능에 충실한 동물이니까, 자신의 불안정함을 어떻게든 표출해야 하지 않겠는가? 내가 집에 갔을 때는 그야말로 혼돈 그 자체였다. 그루밍을 하지 않아 꼬질꼬질한 그 녀석의 모습, 지저분한 화장실과 악취, 여기저기 날아다니는 털 뭉치와 흩어져 있는 여러 물건, 사료 등은 그 녀석의 스트레스 정도를 방증하는 요소였다.


그 녀석의 생존을 위한 필수 요소를 관리해 주고 성급히 집을 나섰다. 그 녀석도 나를 달가워하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이내 고갈되어 가는 약물을 처방받기 위해 병원에 들렀다. 현재의 나의 상태에 대해 객관적인 관찰자의 입장이 되어 덤덤하고 솔직하게 털어놓았고, 기존에 복용하던 약과 상태를 호전시켜 줄 다른 성분의 약까지 추가로 처방받게 되었다. 극약처방이 될지는 복용해 보면 알겠지만 말이다. 병원을 나오자마자 여러 생각에 잠겨버린 나는, 무언가에 이끌린 듯 서점으로 발걸음을 향했고 문득 나에게 속삭이듯 눈에 들어온 쇼펜하우어의 저서 한 권과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라는 책을 충동적으로 구매하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책은 참 좋아하는 걸? 이런 충동구매는 언제든 환영이다. 저 두 권의 책 또한 나의 극약처방이 될까? 어떤 세상을 간접적으로 배우게 될지 설렘이 가득하다. 오늘은 책에 빠져 잠을 이루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뿐이다.


읽어 주시는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오직 음악만이 유일한 치유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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