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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라미수 Apr 09. 2024

아이 학원은 대형학원을, 인간관계는 소수정예를 선호해요

 마당발이 되고 싶었다.

한때는 그랬었다.

스펀지에 물이 스며들 듯 어느 모임에서나 분위기에 녹아들어 잘 어울리고 싶었다. 이질감 없이 어느 자리에서나 융화되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남들과 소통하며 느끼는 피로감은 내향인이어서 이기도 하지만 대면 소통이 부족한 탓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내게 문제가 있다는 생각에 태도를 달리해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려 했다. 자주 만나다 보면 가까워지고 노력하다 보면 인간관계가 폭 넓어질 거라 믿었다.

하지만 두세 명이 모여 식사나 카페에 모여 담소를 나누는 자리를 선호하고, 시끌벅적한 파티보다 조용조용한 대화를 나누는 걸 선호하는 내가, 나의 방식이 아닌 타인의 방식을 따르려다 보니 번번이 벽에 부딪혔다.


 자주 만나다 보니 굳이 모르고 지나가도 되는 부분까지 말하게 되듣게 되었다. 만나는 사람이 많다 보니 그 안에서 갈등 상황이 빈번히 발생했다.

나의 심리적 허용공간이 부족해서일까, 갈등에 연루되는 것을 지극히 경계한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 내가 참으면 시끄럽지 않게 지나갈 수 있기 때문에 웬만하면 참고 지나가려고 한다. 상대방 의견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다투고 싶지 않아서, 에너지와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서 피하는 편이다.

모든 형태의 불의에 참아서도 안 되고, 참지도 않지만 나의 시간과 감정의 에너지를 투자할 만한 일이 아니면 물러서는 것도 살아가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꼭 싸워서 이겨야만 이기는 건 아니니까.

하지만 만나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대인 관계에 불필요한 에너지를 소비하게 됐다. 나의 고민에 그들의 고민까지 등에 얹어져 마음은 무거워졌다. 잦은 만남은 해야 할 일들을 미루게 했고, 내 마음을 돌볼 시간이 부족해지며 나는 점점 지쳐갔다.

넓은 인맥이 주는 이점이 분명 크지만 이로 인해 내가 감내해야 하는 부분이 더 크게 느껴졌다. 폭넓은 인간관계를 가진 이들이 부러웠지만 나는 나만의 방식대로 살기로 결론은 내렸다.

 

 아이의 학원은 대형학원을 선호했지만, 나의 인간관계는 소수정예를 선호한다. 대형 학원의 체계적인 커리큘럼이 아이의 학업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내 예상과는 달리 대형 학원의 커리큘럼은 아이 성적을 상승시키는데 도움이 되어주지 못했다. 체계적이고 시스템화된 커리큘럼이 모든 학생들의 성적에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것처럼 넓은 인간관계 또한 모든 이에게 득이 된다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만나는 상대가 내향형인지, 외향형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나와 같은 내향인과 대화할 때는 편안함을 느끼고 외향형인 친구를 만나면 내가 갖지 못한 면들을 보고 경험할 수 있어 좋다. 어떤 성향을 가지든 내가 그들에게 집중할 수 있는 인원이면 된다.

혼자 있을 때 혹은 둘이 있을 때 편안함을 느끼고, 몇몇의 가까운 사람들과의 친밀한 관계 중시한다. 외향형에 비해 친구가 많지 않지만 한 명 한 명 세심하게 배려한다. 화려한 언변도 유머 감각도 없지만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들어주고 진심을 담아 깊이 있는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나를 드러내는 것이 어색하고, 여러 사람과 함께 어울리는 자리를 불편해하며 소수가 편한 나를 인정하기로 했다. 잦은 만남을 하지 않는 나를, 마당발이 될 수 없는 나를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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