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선량한 차별주의자
저자 : 김지혜
출판 : 창비
카테고리 : 사회학일반
쪽수 : 244쪽
차별받는 사람은 있는데
차별하는 사람은 없는 사회에 살고 있다.
'나는 그런 사람 아니야'라며
나는 공정하다는 착각 속에
일상적으로 하는 말들에서 우리가 알게 모르게
차별이 일어나고 있었다.
'결정 장애'
나도 자주 사용하고 자주 듣는 단어다.
부족함과 열등함의 의미로
'장애'를 단어에 붙인다는 걸 의식 못하는 사이
'장애인'을 열등한 존재로 여긴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다.
분명 장애인을 비하하고자 하는 의미로
사용한 적은 없지만
무심코 던진 말에 누군가는
차별을 느끼고 상처받고 있었다.
나의 자리가 다수자일 때
소수자에게 일어나는 차별에 대해
'그럴만하다'라고 느낀 적이 대부분이었다.
분명 그러면 안 되는 일이었음에도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외면하는 사이
이런 차별들은 고착화되어
그래도 되는 일로 여겨지게 되었다.
'우리'와 '그들'이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경계
자신이 속하지 않은 다른 집단인
'그들'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이
또 다른 차별을 낳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볼 문제다.
우리의 생각이 시야에 갇힌다.
억압받는 사람은 체계적으로 작동하는
사회구조를 보지 못하고
자신의 불행이 일시적이거나
우연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차별과 싸우기보다
"어쩔 수 없다"며 감수한다.
유리한 지위에 있다면 억압을 느낄
기회가 더 적고 시야는 더 제한된다.
차별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고,
"예민하다" "불평이 많다" "특권을 누리려고 한다"며
상대에게 그 비난을 돌리곤 한다. (p79)
국적, 성별, 장애, 나이, 종교, 학력,
지역, 성별 정체성 등 수많은 기준과 범주에 따라
다층적으로 존재하고 구분된다.
한 개인은 동시에 여러 집단에 속해
차별을 받기도 특권을 누리기도 한다.
비하성 표현의 문제를 피하기 위해,
때로 사회는 단어를 교체한다.
'장애자'나 '불구'를 '장애인'으로,
'결손가족'을 '한부모가족'이나 '조손가족'으로,
'혼혈인'을 '다문화가족 자녀'로
순화하는 식이다.
이런 단어의 교체는 그 단어 안에 담긴
무의식적 편견과 낙인을 반성하는 의미가 있다.
하지만 단어의 교체로 낙인이
온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장애인' '다문화' 등의 용어가 다시 낙인을 담은
비하성 용어로 사용되는 것처럼
단어를 바꾸어도 그 대상을
비하하는 마음이 사라지지 않는 한
낙인은 지워지지 않고
다시 살아난다.(p93-94)
한국 사회에서 '다문화'라는 말이
모든 사람이 다양한 문화를 가졌다는 뜻이 아니라,
문화적 소수자만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된다.
아이리스 영은 억압적 의미를 가지는
'차이'를 재정의해야 한다고 말한다.
'주류 집단의 입장을 보편적이라고 보면서
비주류만을 다르다고 표기하는 것이 아니라,
차이를 관계적으로 이해해 상대화하는 것'이다.
여성이 다르듯 남성이 다르고,
장애인이 다르듯 비장애인이 다르다고 보는
상대적인 관점이다.
따라서 차이는 본질적으로 고정된 것이 아니라
맥락에 따라 유동적이다.(p184)
사실 고정관념을 갖기도
다른 집단에 적대감을 갖기도 너무 쉽다.
내가 차별하지 않는다는 건 착각일 뿐,
차별하지 않을 가능성은 안타깝지만
"없다."
내가 공정하다고
차별을 하지 않는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공정하려고 차별하지 않으려는
노력했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과는 다르게
생활 속에서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선량한 차별주의자를 읽으며
누군가에게는 차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차별을 하기도 하고
받기도 하고 있었다.
'그럴 수 있지'라며 차별에
정당성을 부여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희망적인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차별을 하지 않으려 한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생애에 걸쳐 애쓰고 연마해야 할 내용을
'차별받지 않기 위한 노력'에서
'차별하지 않기 위한 노력'으로
옮기는 것이다.(p189)
일상의 미세한 차별적 시선이나 행동은
규제보다는 체계적인 교육으로 바꾸고,
사회 전반을 검토하고
구조적인 차별을 개선할 수 있도록
제도적 골격을 만들어야 한다고
작가님은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