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다니며 나를 위한 도시락을 싸기 시작했다. 회사에 직원식당이 없어 가끔씩 도시락을 싸간다. 매일 싸는 것도 아닌데 보통 일이 아니다.
엄마는 10년을 넘게 도시락을 싸셨다. 그 당시의 엄마들이 대부분 그러셨겠지만, 3살 터울인 나와 오빠를 위해 매일 아침 도시락을 준비하셨다.
도시락 반찬은 김치볶음, 햄, 계란말이, 김 등 몇 가지 안 되는 반찬으로 반복되며 저번 주 반찬과 이번 주 반찬이 별반 다르지 않았다. 엄마한테 도시락 반찬 투정을 한 적은 없었지만, 특별할 것 없는 반찬에 엄마 모르게 불만을 가졌었다. 도시락을 싸 보니 왜 같은 반찬만 반복적으로 싸게 되었는지 알 것 같다. 도시락으로 싸서 다닐만한 반찬이 생각보다 많지가 않다는 것을. 냄새가 많이 나고 국물이 흐르거나 데워 먹어야 하는 것들은 쌀 수가 없다. 요즘은 도시락 반찬으로 쌀 만한 별별 반찬이 다 나오고 전자레인지의 힘을 빌려 따뜻하게 데워 본연의 맛을 즐길 수 있지만 그때만 해도 그렇지가 않았다.
엄마가 싸 주신 도시락 반찬 중 제일 좋아했던 반찬은 잘게 다진 돼지고기를 고추장을 듬뿍 넣어 볶은 것이었다. 볶음 고추장처럼 하는 것인데 카레용 돼지고기를 넣어 볶아 매콤 달콤하게 씹히는 맛이 좋았다. 계란말이와 볶은 김치는 도시락 단골 메뉴였고 최애 반찬이기도 했다.
겨울엔 따뜻한 밥을 먹이기 위해 보온도시락을 준비해주셨다. 보온 도시락을 싸려면 손이 한 번 더 간다. 도시락을 따뜻하게 유지하기 위해 따뜻한 물이나 국물을 넣어야 하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 7시면 나가는 아들, 딸을 위해 엄마는 1시간 전부터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새로 밥을 하고 반찬을 만들고 통에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넣어 수저통과 물통을 함께 준비하셨다. 엄마의 수고로 만들어진 도시락을 가져가며 엄마에게 도시락을 싸준 것에 대한 감사 표시를 단 한 번도 안 해봤던 것 같다. 아침에 해가 뜨듯 아침이면 부엌 한 켠에 놓여있던 도시락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 당연한 것을 하는 것이 얼마나 고된 일이었는지 이제야 깨닫게 되었다.
아이들의 방학이 엄마들의 개학이라고 우스갯소리를 한다. 방학으로 인한 삼식이들을 챙기는 것이 힘들어서다. 눈 한번 감았다 뜨면 밥때가 되어 하루 종일 배고프다는 아이들의 끼니와 간식을 챙겨야 하기 때문이다.
코로나로 등교가 미뤄지고 한 달에 몇 번 등교를 안 하며 아이들의 삼식이 생활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방학 초반엔 아이들이 점심으로 먹을 것을 챙겨놓고 출근을 했지만 점점 꾀가 났다. 사 먹으라고 하거나 라면이든 스파게티든 재료만 사놓고 해 먹으라는 횟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불량 엄마가 되어 가고 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도시락을 싸던 엄마를 생각하면 아무 일도 아닌데...
내가 학교를 다닐 땐 난 365일이 삼식이었다. 네 식구의 삼식이들을 챙기셨던 엄마의 수고스러움을 30년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