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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라미수 Nov 02. 2020

단골가게가 폐업을 했다 (노부부의 아름다운 마무리)

 단골가게였던 30년 전통의 여고 앞 분식집이 얼마 전 폐업 소식을 알려왔다.


 '38년간 변함없이 찾아주신 손님 여러분 감사합니다. 아름다운 마무리를 준비했는데 거리두기란 힘든 시기에 아쉬운 이별을 하게 되었네요. 손님 여러분 덕분에 저희는 작은 꿈을 이루었고 이제 노부부는 그만 물러납니다. 모두 행복하시고 건강하세요. 정말로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분식집 앞 여고를 다니진 않았지만, 동네에선 유명한 분식집이었기에 익히 알고 있었다. 첫째 아이를 출산 후 분식집 옆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자주 들리던 곳은 아니었지만 둘째를 임신한 후 나로 인해 남편은 주인아주머니와 안면을 트게 되었다. 저녁을 먹고 난 후 9시가 가까워오면 가끔씩 매콤 새콤한 것이 먹고 싶어 남편에게 쫄면과 맛탕을 사다 달라고 했다. 가게 마감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한 달에 몇 번씩 방문하는 남편에게 주인아주머니는 혹시 아내가 임신했냐고 물으셨다고 한다. 임신한 아내를 위해 비슷한 시간대에 항상 같은 메뉴를 사가는 남편에게 주인아주머니는 오늘도 왔냐며 반기셨다고 한다. 둘째를 출산을 하며 자연스레 분식집 발길은 뜸하던 중 분식집이 이사를 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혹여라도 멀리 갈까 염려했지만, 다행히도 우리 집을 가운데 두고 오른쪽 건물에서 왼쪽 건물로 이사하게 된 것이었다.


 아이들이 자라 외식이 자유로워지며 본격적으로 4 식구는 분식집의 단골손님이 되었다. 밥이 하기 싫을 때, 면이 먹고 싶을 때, 비가 와서 등 여러 가지 이유를 붙이며 문이 닳도록 다녔다. 주인아주머니는 뱃속에서 쫄면이랑 맛탕 먹던 아이가 이렇게 컸냐며 반기셨고,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고 안부를 물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첫째 아이는 분식집 영원사원 같았다. 칼국수 덕후인 아이는 시험이 끝나는 날이나 개교기념일 등 친구들을 만나는 날이면 친구들에게 이 곳에서 만나자고 해 식사를 했다. 메뉴는 늘 똑같이 칼국수였다. 처음 칼국수를 접한 친구들은 맛있다며 가족들, 이 곳을 몰랐던 친구들을 데려오게 되었고, 다단계처럼 퍼져 나갔다.


 휴일도 없이 일하시던 주인 부부는 건강이 안 좋아지셔 메뉴를 줄이고, 휴일을 만들고, 영업시간을 줄여가며 이곳을 방문하는 손님들을 위해 버티고 버티셨다. 주인아주머니는 언젠가부터 "힘이 들어서 얼마나 더 할 수 있으려나 모르겠어."라고 말씀하셨다. 분식집은 코로나로 인해 거리두기가 시작되며 열고 닫기를 반복했고, 연로하신 노부부는 거리두기가 길어지며 38년 동안 하신 가게를 접어야만 하는 안타까운 현실을 받아들이게 되셨다.


우리가 이사 하기 일주일 전에 들려 식사를 하며 "자주 먹으러 올게요, 건강하세요."라고 했던 것이 마지막 식사와 인사가 되었다. 아이가 이사 가기 싫어했던 이유 중의 하나가 이 곳 칼국수를 자주 먹을 수 없다는 1차원적인 이유를 가질 만큼 아이와 가족이 애착을 갖은 곳이었다. 우리가 이사 가고 한 달도 안 되어 알게 된 단골가게 폐업 소식은 태어나면서부터 살아왔던 동네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던 아이에게 새로운 동네에 정 붙이고 살라는 아주머니의 배려 같았다.


 음식을 통해 우리 가족을 행복하게 해 주었던 단골가게 노부부의 마지막 인사말처럼 두분도 행복하시고 건강하시길 바라며, 나 또한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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