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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설가 김서령 Jan 03. 2022

[우주는 일곱 살] ep.100_위로 받고 싶어



우주에게 이젠 친구 고민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는 여덟 살, 아홉 살까지는 친구 하나 없이 책만 보고 살아서 우주가 벌써 그럴 줄 몰랐다. 그러고 보니 나는 늘 내 어릴 적 모습과 우주를 동일시한 것 같다. 그 시절 내가 하고 싶었던 것, 그 시절 내가 아쉬워했던 것, 그런 걸 기준으로 우주를 키웠나 보다. 


밤이었고 침대였다. 자기 전에 유난히 많이 종알거리는 우리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주는 지연이와 제일 친하지만 유치원이 달라 자주는 보지 못하고 한 번 보면 아주 뽕을 뽑는다. 주로 우리집에서 논다. 까칠한 우주지만 지연이에겐 유독 잘해주고 "우리는 단짝"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우주: 엄마, 나는 지연이한테 좀 섭섭해.

나: 왜? 뭐가?

우주: 나는 지연이한테 뭐든 다 양보하는데 지연이는 한 개도 양보 안 해.

나: 지연아, 너도 양보 좀 해줘, 그렇게 말하지 그래?

우주: 그러면 지연이가 삐질 것 같애.

나: 그러지 않을 것 같은데? 지연이도 너 제일 좋아하잖아.

우주: 나만 좋아하나?

나: 에이, 아닌 것 같애. 

우주: 그럼 왜 나만 계속 양보해?

나: 음.... 우주가 계속 양보하니까 우주는 양보하는 거 좋아하는가 보다, 그러는 거 아닐까? 니가 양보해주니까 지연이는 뭐 양보할 필요도 없잖아.

우주: 그게 아닌데. 나도 지연이가 양보 좀 해줬으면 좋겠는데.

나: 그럼 지연이한테 말해야 해. 사람들은 말하지 않으면 니 마음을 몰라. 엄마가 살아보니 그래. 말 안 하면 모르더라?

우주: 말해도 지연이가 계속 양보 안 해주면 어떡해? 그리고 내가 그런 말을 하면 지연이가 화낼 것 같애.

나: 그러면 친구 못 해.

우주: (화들짝) 그게 무슨 말이야?

나: 한쪽만 일방적으로 참는 관계는 오래 못 가.

우주: 일방적이 뭐야?

나: 한 사람만 혼자서 계속 참는다는 거야. 그럼 어떻게 되겠어?

우주: 내가 스트레스를 받겠지.

나: 그래, 스트레스가 점점 커질 거야.

우주: 지금도 좀 커.

나: 그럼 어떻게 될 것 같애?

우주: 스트레스가 점점 커지면 어떻게 되는 건데?

나: 친구 관계가 끊어지는 거지.

우주: 나랑 지연이랑 친구 못 한다고?

나: 응. 그런 관계는 좋지 않아. 엄마가 살아보니 그렇더라니까? 그건 건강한 관계가 아니야. 

우주: 관계도 건강한 게 있고 안 건강한 게 있어?

나: 그럼. 있지. 세상 모든 관계는 건강해야 해. 공정해야 하고. 공정한 게 뭔지 알지?

우주: 응. 불공정 반대말.

나: 그래. 엄마는 우주가 건강하고 공정한 관계를 만들었으면 좋겠어.     


그런데 조용해졌다. 자나? 

어라? 훌쩍훌쩍 소리가 난다.     


나: 뭐야? 너 울어?

우주: (엉엉 소리내어 울고)

나: 왜 그래? 이게 울 일이야? 아직 아무 일도 안 일어났어!

우주: 그건..... 엉엉.... 지연이와 내 우정이 깨진다는 말이잖아. 엉엉.     


나는 겨우 웃음을 참았다. 

     

우주: 지연이와 내 우정이 깨진다면.... 엉엉.... 그건 너무 슬픈 일이야.

나: 그러니까 둘이 합의 봐. 우정을 깰 건지 같이 양보할 건지.     


우주는 한참 운 뒤에야 마음을 가라앉혔고, 지연이에게 진지하게 이야기해보겠다고 했다. 잠들기 전 우주가 말했다.     


우주: 엄마. 나 아까 왜 운 건지 알아?

나: 슬퍼서?

우주: 아니.

나: 그럼?

우주: 위로 받고 싶어서.     


내 애기가 내게 위로 받고 싶다면 위로를 해줘야지. 듬뿍 해줘야지. 나는 또 위로를 더 얹어주고 싶어서 애기에게 파고들어 안고 깨물고 줄줄 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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