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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설가 김서령 Jan 03. 2022

[우주는 일곱 살] ep.82_세수와 세차



우주는 아직 영어 공부를 해본 적 없어서, 그나마 어릴 때 내 앞에서 재롱잔치 좀 해주던 알파벳 쓰기도 다 까먹었다. 영어유치원 다니는 친구 때문에 스멀스멀 저도 배우고 싶은지 들여다보다 낯선 알파벳(소문자)이 나오니 "엄마엄마, 이거 A 아닌데 왜 A라고 해?" 하길래 대문자 소문자에 대해 조금 알려줬다. 이걸 얘가 어떻게 이해하려나, 생각했기 때문에 그냥 대충 알려주고 말았다.  가만 들여다보던 우주가 빽 소리쳤다!


우주: 엄마! 엄마!

나: (화들짝) 왜애!

우주: 나 알았어!

나: 뭘.

우주: 이게 왜 대문자고, 이게 왜 소문자인지!

나: 응?

우주: 대형! 소형!

나: 응?

우주: 마스크!아빠는 대형! 나는 소형! 그거잖아. 그래서 대랑 소잖아! 그치! 큰 글자니까 대문자! 짝은 글자니까 소문자!     


내 딸이 지금 한자 대와 소를 이해했단 것인가. (물론 큰 대, 작을 소 따위는 모르지만) 얘가 지금 언어의 구조 자체를 깨달았단 것인가. 내가 물론 졸업은 못 했으나 국립대 한문교육학과를 3년이나 다녔는데, 내가 어릴 때 명심보감, 사자소학을 지나 열 살 때 논어, 맹자, 고문진보까지 읽은 사람인데, 내 피를 이렇게 고스란히 물려받았단 말인가. 이 아이는 진정 언어의 천재로 자랄 것인가!


나는 심드렁하기 짝이 없는 가족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우주의 언어 천재성에 대해 쉼 없이 자랑했고, 니 똥 굵다는 이야기를 열 번도 더 들었다.      


며칠 후 세수를 하러 욕실에 들어가려던 우주가 도로 뛰어왔다.     


우주: 엄마! 나 또 알았어!

나: 뭘.

우주: 세차할 때, 아빠가 세차하는 거 말이야, 그 세차가 왜 세차인지 알았어!     


아아. 내 딸은 또 이해했나. 세수와 세안, 그리고 세차의 관련성에 대해서. 정말 이래도 되는 것인가. 나는 벌써 탄성이 터지려는 것을 꾹 참고, 우주의 말을 기다렸다.


나: (흐뭇) 말해봐. 왜 세차가 세차인 걸까? 엄만 진짜 너무 궁금해.

우주: 세차를 하면 새차가 되잖아! 빤짝빤짝해지잖아!     


응.......... 알겠어.

얼른 가서 세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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