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길 수 없는 싸움에 대처하는 법
"... 고개를 높이 들고 주먹을 아래에 내려놓는 거다. 누가 뭐라고 말해도 성을 내지 않도록 해라.
어디 한번 머리를 가지고 싸우도록 해봐...... 배우기 쉽지는 않겠지만 그건 좋은 거란다."
"아빠, 우리가 이기게 될까요?"
"아니."
"그렇다면 왜ㅡ"
"수백 년 동안 졌다고 해서 시작도 해보지 않고 이기려는 노력조차 포기해버릴 까닭은 없어."
- 앵무새 죽이기(To kill a mockingbird), 하퍼 리 지음, 김동욱 옮김, 문예출판, 2002
* mockingbird : 흉내쟁이지빠귀
오바마 대통령이 인생 책으로 극찬했다던, 이미 전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있는. 거룩함마저 감도는 이 명작을 손에 든 계기에 대해서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 예전부터 이 책의 제목을 종종 들어왔고 그렇지만 '얼마나 대단한
책이길래 앵무새 죽이기, 앵무새 죽이기 하는 걸까?'라는 생각을 하며 쉽게 넘겨버렸다.
우선 제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앵무새가 뭔데 죽인다는 말이지? 좀 꺼림직한데. 혹시 사람을 빗댄 표현인가, 무섭게시리... 내용이 만만치는 않겠어.
오랜 시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면 꽤 진중한 가치를 담고 있다는 건데 대체 '앵무새 죽이기'가 상징하는 게
뭐야. 이러고 넘어갔다. 그리고 단순한 베스트셀러를 넘어 사람들의 마음에 파문을 일게 하는 책이라면 나 또한
우선 읽어보고 평가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렸다. 그리고 책장을 펼쳐 읽기 시작하는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인, 지금까지 한 10번쯤 보았으려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버금가는 빠져듦과 동시에 '그래! 왜 사람들이 앵무새 죽이기, 앵무새 죽이기 하는 줄 알겠다.'싶었다. 나는 시간이 지나면 등장인물의 이름도 쉽게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이 책 또한 예외가 아니어서 인물들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스릴러 영화의 반전처럼 좀처럼 집 바깥으로 나오지 않던, 그러다 위급할 때 아이를 구해준 온 몸이 창백한 남자와 진실이 아님에도 뻔한 거짓말을 한 백인 처녀가 생생하고.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아이의 아빠인 변호사 아저씨가 린치를 당하면서도 자신의 신념을 저버리지 않고 정의를 지키고자 하는 모습에 다시 울컥해진다.
이 책을 다 읽고나서도 앵무새가 정확하게 무엇을 상징하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원래 제목은 앵무새가 아닌
흉내쟁이지빠귀라고 번역자의 친절한 설명이 나와 있었고. 앵무새는 흔히 같은 말을 반복하는 새인데, 물론
우리처럼 모든 언어를 이해하고 받아들인다기 보다 무수한 훈련과 연습으로 적게는 몇 개부터 많게는 수십까지의 단어를 외우고 대답한다지만...-앵무새를 사랑하고 연구한 학자들의 책에서 본 듯- 내게는 법정에서 성폭행을 당하지 않았는데도 피의자가 흑인이라는 사실 하나 때문에 아빠의 강요와 폭력에 굴복하여 거짓을 말하던
소녀가 앵무새 같기도 하고. 진실이 은폐되는 지경에서도, 모든 사실을 다 알면서도 입 다물고 있는 동네 주민들이 앵무새 같기도 하고. 또한 앵무새처럼 같은 말을 반복해도 자신의 말을 아무도 믿어 주지 않아 괴로워하던 이가 고통 당하는 모습을 두고 '앵무새 죽이기'라고 표현한 건지.......
내가 가장 존경스럽던 대목은 힘깨나 쓰는 이들이 늦은 밤 변호사를 찾아와 없는 일로 하라고, 법정에 서지 말라고 주먹을 가해도 자신은 그럴 수 없다고 용기있게 대답하는 장면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는 보복하고 억울함을 폭력으로 쉽게 풀고 싶어한다. 내가 한 대 맞으면 정당 방위로 한 대 때려야 공평한 것 같고, 가족이 억울한 일을 당했는데 욱 하는 심정을 꾹꾹 눌러 참은 채, 냉정함을 유지하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또한 생명의 위협을 받는 상황, 더구나 아무 잘못도 없는 자신의 아이가 시시때때로 죽음의 위협에 시달릴 때 어찌하겠는가. 단지 피부색 하나로 누명을 쓰고 피해자에게 아무런 도움을 줄 사람도 없을 때. 자신은 백인이면서도 오지랖 넓게 관여하여 스스로 일을 키우는 모습. 그는 죽음까지 각오했을지 모른다. 내가 이러다 죽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옳다고 믿는 일이기에, 자신의 방식대로 끝까지 살아가는 모습. 흉내내기 어렵지만 그를 존경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머리를 가지고 싸우는 일, 이기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는 일."
세상의 정의와 낮은 자들을 위해 생계보다 신념을 선택하는 많은 사람들. 그 중에는 시민운동가도 있을 테고 인권운동가도 있을 테고. 또한 아무리 급해도 반드시 무단횡단을 하지 않는 사람부터 자신이 마주 대하는 이들에게 미소를 잃지 않는 사람들까지... 다양한 삶의 모습일 것이다.
그럼 내가 머리를 가지고 싸우며 이기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아야 될 분야는 무엇일까? 지금은 집안의 빚을
정당한 방법으로 갚는 것이고 빚을 청산하고 나서는 종잣돈을 모아 돈이 돈을 순환하게 만들어 생계 걱정과 상관없이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여행을 다니고 기도하고 한 걸음 한 걸음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림을 배우는 일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청소년들의 멘토로 귀엽고 사랑스럽고 인자한 할머니로 나이들어 가는 일. 예쁜 집을 지어 제자들을 초대해서 아이들과 마당에서 삼겹살도 구워먹고 외로운 이들에게 한 줌 온기를 선사하는 일. 그런 일들을 꿈꿔 본다.
글을 쓰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서서히 에너지가 응축된다. 그리고 세상에 한 발 내딛을 용기도 생긴다. 당신도 당신만의 방식대로 세상을 살고 있을 것이다. 당신의 방식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이 책의 저자가 말한 대로 머리를 가지고 싸워보는 것은 어떨까? 그리고 이기려는 노력을 결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나아가는 자세로 도전해보는 것은?
고마운 하루! 쳐지기 쉬운 날씨, 그럼에도 힘을 내어 오늘 만나는 아이들에게 미소 지어야지. 당신의 하루도
봄비를 맞아 개화를 준비하는 꽃처럼 눈부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