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는 어디에 저항하고 있는가?

천국보다 더 좋은 곳

by 윤작가

책상 위 달력 오늘 날짜에 '4.19혁명기념일'이라는 작은 글씨가 보인다. 실시간 검색 순위에서도

'4.19'가 우선 순위에 있다. 세월호가 지상으로 올라오고, 대선을 앞두고 여러 후보들의 유세가

진행되는 요즘. 내 눈에 잡히는 기사들은 불행하기 그지없고 기운을 쏘옥 빠지게 하는 소식들 가득.


진돗개를 숭배하여 세 살배기 아기를 살해한 사람들. 신이 이야기했다고 하면서 전세를 빼서 월세로 옮기더라도 투자금 유치가 가능하니 자신의 말을 들으라고 신도들에게 사기 친 거짓 목사. 어느 드라마 조연출의 자살과 회사의 대응. 오갈 데 없는 십대를 꼬드겨 원룸을 얻어준다하고 겁탈한 변태 인간. 유명 사립 대학교에서

술 취한 학생을 자신의 연구실에서 강간하고도 버젓이 존재하는 교수와 연말 인사고 때문에 수사 중지한 검찰.


참으로 기막힌 세상이다.


그들은 변하지 않는다. 변할 이유가 없을 테니. 지금도 충분히 먹고 살 만하고 자신들에게 불리할 게 없다.

권력으로, 돈으로, 뒷배경으로 그저 편하게 먹고 놀고 할 것 다해도. 설사 잘못이 있다고 해도 다른 이에게

떠넘기거나 뇌물을 주고 달래거나 약점을 쥐고 협박하면 그만이다.


막장은 더 이상 드라마 속 세계가 아니다. 영화 속에서나 상상력으로 이루어지는 일들이 아니다. 그 막장보다

더한 일들이 지금 내가, 우리가 사는 이 현실 속에서 날마다 일어나고 있다. 5월 황금연휴를 맞이하여 해외로

여행을 떠나려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그 연휴를 즐기지 못하고 일을 해야 하고. 아니, 일을 하고 싶어도 일자리를 못 찾는 이들도 있다.


가이드 연수를 위해 보라카이로 떠난 나의 제자는 구걸하는 남매의 사진을 보내왔다. 모두가 해변에서 웃고

즐기고 마시고 떠들 때 한 구석에서는 맨 발로 음료수 병을 앞에 놓고 집에 가지 못 하는 소녀가 있고 그 소녀의

무릎을 베고 잠이 든 남동생이 있다. 누군가 돈을 넣자 살포시 잠이 깬 남동생.


누구는 그 곳에 건물을 짓고 청소부를 들이고 경호원을 세우는데 누구는 구걸을 해야한다. 왜 그래야 하는가?

그저 휴양지로 이름 날리던 보라카이가 내게 사뭇 다른 시선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왜 인간들은 사람이 아닌

개는 업고 유모차에 태우면서 자신이 낳은 아기를 무참히 때려 죽일 수가 있지? 자신을 믿고 그게 신을 사랑하고 자신의 믿음을 지킨다고 생각하는, 우매하지만 순진한 사람들에게 사기를 치는 목사가 나오지? 왜 같은 공간에서 함께 예배를 드리고 동일한 신을 믿으면서도 자식이 죽은 부모 앞에서 무참하게 비난을 일삼지? 왜 왜 왜,

인간들은 그러지?


오늘 아침 문득 스스로에게 질문해보았다.


"너는 지금 천국갈래, 여기 있을래? 둘 중 어디가 더 좋아?"


바로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아직 이 곳에 미련이 많은 까닭이리라. 그리고 동일한 질문을 이 사회에 던지고 싶다.


"당신은 지금 천국보다 더 행복한 곳에 있지 않나요? 먹고 싶을 때 먹고 즐기고 싶을 때 즐기고 마음대로

하고 살 수 있어서 죽어서 천국가는 것보다 그냥 이 세상이 더 좋은 게 아닌가요?"


물론 이 질문에 대답을 할 사람들은 따로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어지러운 이 세상에서, 아픈 세상에서, 매일같이 한 곳에서는 자살 테러가 끊이지 않고 굶주린 아이들이 죽어가는 이 땅에서.......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지

갑자기 묻고 싶었다.


"너는 사람답게 살고 있니? 너는 사람의 모습을 하고 사람으로 살고 있니? 누구를 탓하기 전에 네 마음은

온전하게 살고 있니?"


대답할 수가 없다. 나는 무엇에 저항하고 있는가? 우리는 무엇에 저항하고 있는가? 그저 하루 눈을 떠서

밥을 먹고 일을 하고 아니면 자신의 목표를 향해 한 걸음씩 성실하게 살아가고, 정말 그게 다일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삼일천하로 끝난 갑신정변. 김옥균으로 대표되는 급진 개화파들은 무엇을 위해 삶을 던졌나? 내 삶에 혁명을

일으키고 저항하고 개혁해야할 부분은 어디인가? 갑자기 신랄해진다.


물론 따뜻하고 아름답고 멋진 일들도 존재함을 안다. 빛과 소금처럼, 이름도 없이 그늘지고 낮은 곳에서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는 이들이 많음도 안다. 그러나 이 아침 나는 다시 마음이 무거워진다. 앞으로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어떤 방향으로 가야할 것인지 고민이 많아진다.


어젯밤,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지인으로부터 받은 전화 한 통이 마음을 무겁게 하여 쉽사리 잠이

들지 않았다. 본인과 맞지 않은 목회자에 대한 비평. 여러 번 들은 터이지만 나는 누구 편도 들지 못 하고 그저

마음만 괴롭다. 우유부단한 건지, 그 소용돌이에 끼이고 싶지 않은 건지, 둘 다 인지 나도 모르겠다.


다만 지인과 지인이 비판한 목회자 두 분을 위한 기도를 동시에 할 뿐이다. 서로의 마음을 알기에 한편에서

뭐라고 할 수 없다. 민씨 정권을 받아들이지 못한 급진 개화파의 입장과 타협을 하면서 같이 가자던 온건 개화파처럼 우리가 서로 극단으로 나누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대립이 아니라 조화와 균형을 지향한다. 그러나 때로는 어느 편에 서서 목소리를 높여야 할 때도 오겠지.


4.19혁명기념일을 맞아 아직도 나의 시선이, 안목이, 통찰이 부족하고 연약함을 한탄하면서 그들이 목숨을

바쳐서라도 기꺼이 이뤄낸 값진 열매를 헛되게 하고 싶지 않기에 나도 조금 더 용기있고 결단력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대는 어디에 저항하고 있는가? 저항을 하고 있는가?"


묻고 싶은 날이다!


추신. 어제 늦도록 질문하고 묻고, 같이 열공했건만 망쳤다는 그녀의 대답에 기운이 더 빠진다. 그 놈의 수행 평가 점수가 뭔지. 나의 저항은 어디를, 누구를 향해 있는지. 우선 내 마음을 낙심케 하는 일들부터 처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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