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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작가 May 24. 2021

땟국물 주르륵

이모 육아 일기

기어이 울음이 터졌다. 밥상을 앞에 두고 윗입술이 쑤욱 나온 채 밥숟가락을 입에 넣다 울음보가 터졌다. 

"그만 해라. 애 밥도 못 먹게!"

나도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다. 말 나온 김에 단단히 짚고 넘어가자 해서 말이 길어진 것뿐이다. 사건의 말단은 J의 땟국물 때문이었다. 무슨 말이냐 하면 느닷없이, 더 정확히 말해 조카의 때를 본 어머니가 폭발을 해서

내게 야단을 쳤기 때문이다.

"애 좀 제대로 씻기지, 이게 뭐냐? 봐라, 팔에 때가 달라붙었다."

하.. 그래, 제대로 못 본 건 내 탓이라 하자. 제부의 도박과 의처증으로 인한 가정폭력, 동생을 협박해서 아내의 신용카드를 도용하여 6천만 원 이상 대출해서 도박에 말아드신 그 한 놈 때문에 올초 우리 가족은 식구가 늘었고 나는 수술을 한지 세 달도 못 되어 몸을 살필 틈도 없이 조카 육아에 정신이 없는 지경이다.

결혼도, 출산 경험도 없는 내가 초딩을 키우자니 힘에 부친다. 모르던 것을 알아가야 하고 못 하는 것도 해내어야 한다. 오은영 박사의 말대로 6세 이후 아이의 신체를 부모라도, 가족이라도 함부로 만지는 것은 조심스러운 일이라 조카에게 샤워하라고 시켜둔 까닭이다. 조금 서툴러도 스스로 하게 만들어야 앞으로 독립도 하고 지 인생 지가 알아서 살지 싶어 조금은 설렁설렁 둔 탓도 있다.

그런데 오전부터 엄마의 고함 소리에 나는 억울하기도 하고 굳이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동안 쌓였던 게 폭발 지경까지 다다랐다.

"나라고 노냐구요? 쉴 틈도 없이 애들 챙기고 집안일 해야 하고. 고학년인데 지 몸 하나는 지가 

닦을 줄도 알아야죠. 그리고 때 한 번 있다고 죽나요?"

나도 물러서지 않고 어머니에게 대든다. 한숨이 터져나오고 긴장 모드에 집안의 공기가 차가워진다. 그 와중 저녁 때 씻겠다고 물러서지 않는 조카를 보자 기가 차서 나의 잔소리가 늘어난 것이다. 어젯밤 늦게 간식을 먹어서인지 e-학습터를 끝낸 조카가 막 첫 술을 뜨려고 하는데 내가 야단을 치니 그걸 본 엄마의 마음도 편치 않았으리라.

"징그럽다, 너도 그만 해라!"

"이게 다 누구 탓인지 근원부터 찾아들어가볼까요? 저 건드리지 마세요. 폭발하기 전에"

책임감 강하고 강직하지만 아닌 건 끝까지 아니라고 하는 딸의 성정을 아는지라 어머니가 그냥 참으신다. 

"J야, 네가 안 씻으면 누가 욕을 먹겠니? 사람들은 너를 키우는 엄마를 욕할 거 아니니?"

철 없는 아이를 붙들고 내가 너무 멀리 갔나 싶은데 잘못된 것은 확실히 짚어주고 바르게 잡아야 올바로 클 거라고 믿기에 악역을 맡았다. 그러면서도 가슴은 찢어진다. 누군들 귀한 아이에게 이런 말까지 하며 단속을 하고 싶겠는가? 그 놈의 나쁜 새끼 때문에 우리가 무슨 꼴인지 또 우울이 얼굴을 내밀고 마음이 상한다.

그래도 아이는 웃으며 "사랑해'를 외치며 학교에 갔다.

동생과 아이들이 오고 난 후 동생과 몇 번, 엄마와 몇 번 큰소리가 오간 후로는 서로를 알아 조심하는 편이다. 어머니는 내게도 큰소리를 못 치고 누구에게 칠까 하는 생각에 죄송스럽기도 하지만 집안의 큰 줄기를 잡아가야 하는 것은 나이기에 아프지만 해야 하는 일이라고 마음을 붙잡는다. 나중에는 웃을 날도 오겠지. 언제쯤 그런 날이 올까 싶은데. 그래도 오긴 오겠지. 

조카의 땟국물 사건으로 가족간에 의만 상할 뻔 했다.

이제 시작인데 말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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