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 육아 일기
아침부터 빗방울이 떨어진다.
아이들이 온 이후, 동생 사건이 터지고 난 후 꿈을 꾸는 횟수가 늘어났다. 깊이 자지 못하는 탓이려나.
어제는 동생 생일을 맞아 조카와 함께 동네 피자가게에서 페퍼로니 피자 M을 포장해왔다.
“이모, 저기에 베스트 적혀 있는 거 보니까
괜찮을 것 같아.”
귀요미 말대로 페퍼로니 작은 걸 골랐다. 일요일에 앞당겨 동생 생파(생일 파티)를 미리 했지만, 그래도 당일 그냥 넘기기 아쉬워 저녁을 먹은 후였지만 기분 낼 겸 조카와 포장해왔다.
동생은 동생대로, 난 나대로, 엄마는 엄마대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사느라 힘겹다. 요즘 부쩍 다이어트 신경 쓰느라 밥 대신 바나나 삼매경에 빠진 첫째도 맛있게 먹는다. 동생은 일이 힘든지 집에 오면 파김치다. 신문기일이 다가올수록 불안한지 악몽을 꾸기도 한다.
꿈에서조차 동생과 이야기하고, 일을 그르치지 않기 위해 온 몸에 힘을 주는 내가 보인다. 자면서도 계속 생각을 멈출 수가 없고 이들을 지켜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과 부담감, 고단함에 몸은 피곤하다.
동네 피자집에서 포장해온 페퍼로니 피자 한 판!
두 번째 스무 살을 맞이하는 것처럼 새 출발하라는 의미에서 초 두 개 꽂고~^^
우울함에 디자인 문구 굿즈나 소소한 생필품에 돈을 쓰는 경우도 늘어난다. 쇼핑 중독도 우울함의 한 증상이라는데 동생 생일을 맞아 어머니, 동생, 나, 조카들 옷까지 온 가족 새 옷으로 장착했다. 쇼핑은 잠시 기쁨을 주지만 오래 지속되진 못한다. 뭔가를 자꾸 대비하고 준비하고 살림을 꾸려가기 위해 나의 모든 것이 그것에 집중된 탓인지도 모르겠다.
쓸데없이 휴대전화를 자주 붙들고 있는 것도 우울의 한 원인이기도 한 것 같다. 우선 인지했으니 ‘안락의자 증후군’에 빠지는 것은 조심할 테지만 지속적으로 자신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책도 필요 이상으로 사놓고 읽지 않은 책이 더 많다. 그래서 이번 달부터는 꼭 필요한 것만 구입하자고 해놓고도 잘 되지 않는다.
피해 사실을 신고하고도 괴로움에 죽음을 선택하는 피해자들의 기사를 읽으며 가슴이 아프다. 삶은 계속되고 살아있는 동안 고통도 지속된다. 자기 일 아니라고 남들은 이런저런 소리를 쉽게 늘어놓지만 당사자의 상처는 생각보다 깊다. 그래서 더 끈질기게용기를 내기로 했다. 우울함에 휩싸인 나를 발견하고 불안감에 기분이 처질 때에라도 그 속에서 침몰하지 않고 하나씩 조금씩 앞으로 나가는 걸 택하겠다.
그동안 숨 가쁘게 달려온 몇 달 동안 잘 견디는 것 같던 어머니는 결국 감기몸살에 모든 입맛을 잃으셨고 나는 서서히 우울의 늪으로 들어가 자잘한 물건으로 마음을 위로하자고 쇼핑 중독에 빠졌다. 그럼에도 우린 살아있고 살아가야 한다. 기도하며 더 크게 숨을 쉬고 쇼핑 대신, 포털 사이트 검색 대신 몸을 움직이는 편을 선택해야 한다. 읽어야 할 책들을 읽고 내키지 않지만 해야 할 일들을 해나가야 한다.
일상은 반복된다. 밥 차리고 설거지하고 바닥 닦고 씻고 아이들 학교 보내고 간식 주고 수학 문제집 한 장씩 풀라고 말하고 모기 잡고 일하고 책 보고 한숨도 쉬고 멍 때리고 휴대전화 보고 휴대전화 내려놓고 자고 먹고 또 먹고 우울해하고 글 쓰고 따위. 숨 쉬기 위해 이곳에 생존 기록을 표시한다. 더 견고해질, 새로워질,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을 나 자신을 위해. 우릴 위해. 먼저 세상과 이별한 수많은 피해자들과 유가족들의 마음을 위해. 삶을 위해서 말이다.
모든 게 추억이 될 때까지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