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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작가 Jun 23. 2021

특별한 야식

이모 육아 일기

독서 모임 전 이른 저녁을 먹은 탓인지 모임이 끝나자 조금 배가 고프다.

"배 안 고파?"

J에게 물으니 조금 출출하단다.

"진라면, 스낵면, 안성탕면 중에서 뭐?"

라고 물으니 안성탕면이란다. 종종 있는 특별한(?) 야식이다.

건강에도 크게 좋지 않은 라면을 끓여 준다는데도 일어서서 꾸벅 "감사합니다!"하고 소리친다. 내가 더 미안하게.

뚝배기에 끓이다 마지막 즈음 계란을 넣고 젓지 않고 살짝 익히면 J가 좋아하는 반숙 라면 완성!^^


조카 양육을 하다 보니 예정에 없던 일들이 자주 생긴다. 어제 저녁 소파를 타고 놀던 아이는 오른쪽 새끼발가락을 접질렸는지 발에 열이 나고 붓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어머니는 냉찜질을 한 후 파스를 발라주셨다. 특별한 게 아니다 싶어 30분 정도 조용히 있다 계속 아픈지 우리에게 이야기를 꺼내는 아이.

오늘 아침 담임 선생님께 문자를 드리고 정형외과를 가려다 괜찮다는 J 말에 그냥 학교에 보냈는데 통증이 멈추지 않는다.

"뼈에는 이상이 없어요."

사진을 찍어봐도 별 이상 소견이 없는데도 아프다고 하니 다시 사진을 찍으란다. 그런데 정형외과에 아픈 분들이 잔뜩이다. 대부분 골다공증과 여러 가지 통증으로 오신 분들 같다. 코로나로 영재 학급도 2주간 없고 일찍 온 김에 병원에 들렸는데 여기도 환자 가득. 혼자서 걷지 못해 병간호하는 이의 도움을 받아 겨우 화장실에 가고 의자에 앉는 할머니. J처럼 어느 아이도 발가락에 이상이 있는지, 사진 찍으러 아이와 같이 온 아버지. 어느 할머니가 원무과에 약 타러 왔다고 말하니 대뜸 "그런 건 의사에게 말해라!"하고 고함을 지르는 다른 할머니. 나의 눈은 쉴 새 없이 돌아간다. 사람 구경 아닌 구경으로. 한 시간 가량 기다리자 우리 차례가 왔다.

의사 선생님도 환자들처럼 지긋한 나이. 한참 화면을 보시고는

"뼈에는 이상이 없는데... 인대가 늘어났나?"

혼잣말처럼 하시다 아이의 아픈 발가락을 여기저기 누르고는 통증 부위를 찾으신다.

아플 이유가 없는데 아픈 부위가 있으니 다시 사진을 찍으라고 하셨다.

'사진 두 번 찍으면 그만큼 방사능 수치 올라가는 거 아냐?'

아이가 담당 선생님 뒤를 따라 방으로 들어간 후 걱정된 나는 멀찌감치 서서 조카를 기다렸다. 곧이어 아무렇지 않게 나오는 아이. 선생님은 발가락이 움직이지 않게 랩핑을 하라신다. 그리고 간호사 선생님에게 발가락을 벌리라고 말씀하시고는 직접 감아주신다.

적절한(?) 치료를 받은 탓인지 조카는 아프다는 소리를 덜 하고 약도 없이 사진값만 내고 귀가. 병원 가기 전 약속한 햄버거를 사러 버거킹에 들렸다. 손님은 창가 쪽에 몇몇 앉아있고 대기하지 않고 바로 주문 가능. 햄버거 세트 하나에 9900원이라니. 비싸다.


아이를 키우는데 이렇게 많은 수고와 예기치 않은 일들이 생기는 줄 몰랐다.

"부모 심정 알라고 하나님이 보내신 거야."라고 우스갯소리로 말씀하시는 어머니. 그런  같기도 하다. 혼자만의 시간이 거의 없어 정신적 피로도는 상승하고 이유 모를 화병이 자꾸 도지려고 한다. 그래도 누군가를 지키고 보호하는 일은 보람되고 기쁘기도 하다. 애교 넘치는 둘째의 인사를 듣고, 소파를 놀이터 삼아 뛰어다녀도 예쁘기만 하다. 요즘 다이어트한다고 대놓고   먹고 자기 나름대로 생명을 부지하는 첫째도 고맙다. 학교에  다녀줘서. 돌아보면  모든 것도 귀한 추억이 되겠지. 다시   소중하고 애틋한 시간이  것이다. 지금은 너무 힘들지만.


작년 연말 병원에 가자마자 복막염으로 수술을 하고 일주일간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어 좋았다. 아무 걱정 없이 쉴 수 있어서. 지금은 그렇지 않다. 몇 사람 몫을 해내야 하고 벌이는 시원찮은데 들어갈 데는 엄청 많다. 카드 한도가 금세 초과다. 그래도 누군가를 살리는 일은 신나는 거다. 힘을 보태어 나만을 위한 삶이 아니라 다른 이들을 살게 하는데 참여할 수 있다는 건 그래, 축복이다. 고난 속의 축복.

골다공증 주사를 주기적으로 맞고 약을 타러 오신 어르신들을 뵈니 어머니 생각이 절로 났다. 언젠가 엄마도 늙으면 저렇게 될까? 우유 많이 드시라고 해야지. 칼슘 챙겨 드려야겠네. 이번에 산양유 단백질 주문하길 잘했네. 이런 생각이 든다. 벌써 애틋하다. 늙어가는 것, 노쇠해지는 것. 그것은 누구의 도움 없이 살기 힘들다는 것이고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힘이 적어진다는 것이다. 아까는 자꾸 화가 나려고 했는데 지금은 강 같은 평화가 찾아왔다. 받아들였기 때문일까? 받아들일 수밖에 없기 때문일까?

잠을 못 자고 살이 10kg이나 쪘다는 지인의 말에 그동안 전조 증상이 있었구나 싶다. 본인도 몰랐을 텐데 몸은 많이 힘들었겠구나 싶고. 지인의 조직 검사 결과가 악성이 아니길.

'기도했지만 다시 바라요. 아프지 않고 살 수 없다면 덜 아프면서 살도록 때로는 서로에게 기대고 손을 내밀고 받아주고 힘을 보태주기도 해 보는 건 어떨까요?'

어머니와 동생의 극진한 간호를 받고 걸음걸이를 회복한 나는 이렇게 일이 많아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래도 후회 없다. 다시 선택하라고 해도 이들이다! 사랑하는 우리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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