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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작가 Jul 27. 2021

인스턴트식 방학 보내기

이모 육아 일기

동생의 일로 조카들과 생활하며 달라지는 것들이 있다.


1. 보리차 끓이기에서 생수 시켜먹기

2. 밥 잘 안 먹는 초딩 입맛 따라 라면류 먹기

3. 시시때때로 과자와 아이스크림 사 먹기

4. 학원 대신 집에서 하루 종일 폰과 지내는 모습 지켜보기

5. 아침 먹고 치우고 점심 먹고 치우고 저녁 먹고 치우고. 주부의 고뇌에 빠지다

6. 책 읽는 나 따라 절대 책 안 보는 딩딩들(초딩, 중딩)에게 잔소리 늘어놓기

7. 어머니 다리,  무릎 혹사하기

8. 밥통에 남아도는  두고 곤약밥 시켜주기


따위이다.


다이어트에 목표를 정하고 밥을 안 먹기 시작한 예쁜 중딩이는 하루에 물 먹는 하마가 되어 보리차 끓여놓기 무섭게 물을 리필해야 하는 지경. “도저히 안 되겠다. 우리도 생수 시키자.” 어머니 말씀에 작은 병으로 80개 생수 시켜 먹고 있다. 예전에는 조금 불편해도 일부러 건강상 물을 끓여 먹었는데 지금은 그럴 여유가 없다.


밥순이인 나는 우아한 브런치 따위는 모른다. 유명한 빵을 먹어도 무조건 밥이 들어가야 소화력 상승하는  토종형 입맛인데 귀요미 초딩 따라 인스턴트 식생활로 돌아선 지 오래. 아이들은 천하무적. 본인 싫은 건 안 먹는다. 그냥 어머니가 해주는 대로, 그것조차 적게 먹어 문제였지만. 고기 없어도 반찬 없어도 대충 배만 채우면 되는 나는 아이들 식성 따라 한 번씩 로제 떡볶이, 고추 바사삭 치킨, 마블링, 고블링 소스. 불닭볶음면에 치즈 얹어 먹기, 콘프라이트에 우유 따위로 다른 세상에 적응해야 했다.


좋고 싫고의 문제가 아니라 아이들이 뭐라도 먹고 커야 하기에 점점 자유스러워진다고 해야 할까? 동생은 이혼 조정에 들어갔지만 상대측의 비협조적인 태도에 마무리가 안 되어 여전히 고생이다. 그런 동생과 조카들을 생각하면 자면서도 안쓰럽고 학원비가 부담스러워 초딩이 간절히 원하는 태권도도 못 보내고 있다. 그런 아이는 고맙게도 많이 조르거나 떼쓰지 않고 일상을 살아간다. 유튜브와 함께!


코로나로 주변 학교들도 전수 검사를 받기도 하고 지역구에도 계속 확진자 재난문자가 끊이지 않는데, 방학조차 집안에서 폰만 보며 지내는 아이들이 가엾고 어른으로 미안해진다. 그래도 가끔씩 용돈벌이 겸 집안일도 하며 건강하게 커주는 모습에 큰 것을 바라지 않게 된다.


온종일 휴대전화만 붙들고 “이게 방학이야!” 외치며 마음껏 놀고 있는 아이들을 어찌해야 할지... 늘 치우는 것은 내 몫! 그 일이 지겹다. 가사 노동은 자꾸 한다고 보람 있는 게 아닌 듯. 이제 슬슬 치우고 잔소리도 늘어놓을 시간.


“눈은 좀 쉬어야 하지 않겠니, 얘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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