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 따라, 마음 따라 만들어지기에
더위에는 타이레놀?
사우나도 아니고 이 여름, 정말 습하다. 자고 일어나면 개운한 게 아니라 몸이 찌뿌둥하니 가라앉는다. 몇 해 전 땀띠가 나서 중고 에어컨을 설치하긴 했지만, 지금 틀기는 꺼려져서 참고 있는데... 선풍기를 돌려도 더운 바람이 오가는 것 같고, 기운이 빠져 몸이 축 늘어진다. 그래서 쉽게 일어나기 어려웠다.
마치 감기 기운이 있는 듯, 몸도 부은 것 같고 컨디션이 안 좋아 바닥에 늘어져 있으니 어머니께서 타이레놀 하나를 찾아 꺼내신다.
반찬 재고 처리에 완성맞춤, 볶음밥!
나만 더운 게 아닐 텐데, 어머니는 아침부터 분주하다. 자식 입에 하나라도 더 넣겠다고 불 앞에서 남은 반찬 털어놓고 볶고 계신다.
"아유, 짜라. 짜게 됐네!"
가끔 그러신다. 간장이 더 들어간 모양이다. 다른 양념을 첨가하거나 해서 그녀만의 간 맞추기가 시작되겠지.
자신의 음식을 소재로 글을 쓰는 것을 아시기에 이제는 설명까지 덧붙인다.
"이것은......."
가지 무침, 어묵 볶음, 먹다 남은 나물 등 갖가지 재료 총출동하여 한 편의 음식 드라마가 완성됐다. 계란 프라이는 따로 추가하신 듯하다. 그 옆에 상추와 오이, 당근도 놓여있다. 무기질과 비타민까지 챙기라는 의미다. 멀리서 보면 하나의 미술품처럼 여러 가지 색깔이 혼합되어 지도 위 대륙 같기도 하고 행성 같기도 하다.
음식은 사랑이다
초복이 지나가서 그런지 동생이 닭을 사 왔다며 백숙을 해준다고 했다. 고맙지만 사양했다. 육류를 싫어하는 나는 닭고기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조카들은 너무 좋아한다.
동생은 얼마 전 취업을 위한 최종 면접까지 마치고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다. 쉬는 때, 모처럼 솜씨를 발휘할 모양인데. 모녀 아니랄까 봐 어머니 닮았다. 요리 싫어하는 나는 누굴 닮았나? 생전 아버지도 워낙 먹는 걸 좋아해서 음식을 잘 만들었지만, 말 그대로 자주 했다는 의미이지 조리 과정이 깔끔하다거나 맛이 일품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아무튼 백숙 싫다는 언니를 위해 동생이 계란말이를 해줬는데, 검은 상 위에 놓고 찍으니 이 또한 검은 캔버스 위 작품이 되었다.
마음을 다해 준비해 준 음식은 하나의 명화나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일부로 찍고 기념하고 음미한다. 눈으로 음미하는 것이 내 특기이다!
어머니 밥상에 오른 음식들
날은 더운데 살은 안 빠지고. 어젯밤 퇴근 후 꼬르륵 거리는 소리를 들었지만, 일부러 안 먹었더니 아침에 깨자마자 또 꼬르륵 거린다. 그래서 어머니 반찬 꺼내 아침을 먹었더니, 동생이 오늘은 당근 김밥을 만들어 조카 손으로 전해준다.
이 글을 쓰기 전 당근 김밥은 점심 한 끼로 벌써 뱃속에 들어갔다. 식재료가 많지 않아 간단하게 만든, 꼬마 김밥보다는 크고 일반 김밥보다는 작은, 앙증맞은 동생표 당근 김밥.
어머니 밥상에 조금씩 동생의 손길이 묻은 음식이 오르고 있다. 그 말은 앞으로 종종 언니가 쓰는 글 속에 동생의 음식도 등장할 거라는 예고이다.
너무 더워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흐르고 피부는 따끔거린다. 이제 시작인 여름이 언제 끝날지 간절히 바라게 된다. 이렇게 지구 온도를 높인 종족의 한 명으로 이 행성에게 미안해서라도 에어컨을 덜 사용해야 하는데...
오늘은 아침을 먹고 선물 받은 비타민 B를 먹었다. 구내염 방지할 겸 더위 이길 겸.
잘 먹어야 여름을 날 수 있다. 다이어트도 해야 하지만 우선은 생존을 위해 감사한 마음으로 만들어주신 음식들을 맛있게 먹는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