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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진영 May 30. 2018

당신의 거미줄에 묶인 줄도 모르고

할머니를 위한, 할머니에 의한 노래


요즘 가수 현철의 노래에 빠졌다. 가장 좋아하는 곡은 <싫다 싫어>. 후렴구에 나오는 '당신의 거미줄에 묶였다'는 표현이 재미있다. 진주의 <난 괜찮아>에는 못 미치지만 꽤 흥이 나는 노래다. 요즘 내 입과 귀는 이 노래에 지배당하고 있다. 시도 때도 없이 흥얼거린다. 이게 다 할머니 때문이다.


얼마 전, 할머니를 위해 방구석 노래교실을 열었다. 둘이 같이 <싫다 싫어>를 한 소절씩 듣고 따라 부르기를 반복하는데, 음정 잡기가 영 쉽지 않다. 노래를 부르다 보면 현철 아저씨가 얼마나 노래를 잘하는 건지 새삼 깨닫게 된다.   


수십 번을 반복해서 듣고 불러도 몇 분 지나면 잊어버리는 할머니는 3개월 만에 겨우 후렴구를 외웠다. 이제는 내가 ‘당~신의 거~미 줄에~~’라고 운을 떼면 할머니가 받아서 ‘묶인 줄~도 모르고’ 한다. 거의 자동이다.


이 순간의 백미는 할머니와 내가 동시에 힘줘서 ‘모르고~!!’를 외칠 때다. 둘이 같이 ‘모르고~~!!!’를 외치면 마치 할머니와 함께 아이돌 콘서트 현장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며칠 전에는 누워 있는 할머니가 잠든 지 보려고 나지막이 ‘당~신의 거~미 줄에~~’라고 미끼를 던졌더니 할머니가 ‘묶인 줄~도 모르고’ 라며 덥석 물었다. 이 노래가 이렇게 유용하다.     



"당신 아닌 다른 사람도 얼마든지 많고 많은데  

왜 하필 당신만을 사랑하고 이렇게도 애를 태우나    


싫다 싫어 꿈도 사랑도  

싫다 싫어 생각을 말자     


당신의 거미줄에 묶인 줄도 모르고  

철없이 보내버린 내가 너무 미워서    


아차 해도 뉘우쳐도  모두가 지난 이야기"



아이패드로 음악 감상 중인 할머니. 최애곡인 현철의 <청춘을 돌려다오>를 듣는 중이다.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이 노래를 어마 무시하게 잘 부르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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