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를 위한, 할머니에 의한 노래
요즘 가수 현철의 노래에 빠졌다. 가장 좋아하는 곡은 <싫다 싫어>. 후렴구에 나오는 '당신의 거미줄에 묶였다'는 표현이 재미있다. 진주의 <난 괜찮아>에는 못 미치지만 꽤 흥이 나는 노래다. 요즘 내 입과 귀는 이 노래에 지배당하고 있다. 시도 때도 없이 흥얼거린다. 이게 다 할머니 때문이다.
얼마 전, 할머니를 위해 방구석 노래교실을 열었다. 둘이 같이 <싫다 싫어>를 한 소절씩 듣고 따라 부르기를 반복하는데, 음정 잡기가 영 쉽지 않다. 노래를 부르다 보면 현철 아저씨가 얼마나 노래를 잘하는 건지 새삼 깨닫게 된다.
수십 번을 반복해서 듣고 불러도 몇 분 지나면 잊어버리는 할머니는 3개월 만에 겨우 후렴구를 외웠다. 이제는 내가 ‘당~신의 거~미 줄에~~’라고 운을 떼면 할머니가 받아서 ‘묶인 줄~도 모르고’ 한다. 거의 자동이다.
이 순간의 백미는 할머니와 내가 동시에 힘줘서 ‘모르고~!!’를 외칠 때다. 둘이 같이 ‘모르고~~!!!’를 외치면 마치 할머니와 함께 아이돌 콘서트 현장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며칠 전에는 누워 있는 할머니가 잠든 지 보려고 나지막이 ‘당~신의 거~미 줄에~~’라고 미끼를 던졌더니 할머니가 ‘묶인 줄~도 모르고’ 라며 덥석 물었다. 이 노래가 이렇게 유용하다.
"당신 아닌 다른 사람도 얼마든지 많고 많은데
왜 하필 당신만을 사랑하고 이렇게도 애를 태우나
싫다 싫어 꿈도 사랑도
싫다 싫어 생각을 말자
당신의 거미줄에 묶인 줄도 모르고
철없이 보내버린 내가 너무 미워서
아차 해도 뉘우쳐도 모두가 지난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