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꼬리는 누가 해?
이십 대 초반, 고등부 보조 교사로 열일하던 시절의 이야기다. 내가 속한 교회에서 고등부를 담임하셨던 전도사님은 기도 중에 이런 말을 자주 하셨다.
꼬리 아닌 머리 되게 하시고…
꼬리 아닌 머리라… 그때마다 나는 본능적으로 반감을 느꼈다. 내가 머리보다는 꼬리에 가까운 사람임을,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거라는 걸 알았기 때문일까.
모든 사람이 머리가 될 수는 없고, 꼬리 없이 머리만 있는 생물도 온전하지는 않은 건데… 그럼 꼬리 된 사람은 기도를 적게 하거나 응답받지 못한 사람이라는 건가…. 동시에 그럼 전도사님은 스스로 머리라고 생각하시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꼬리 된 사람이라고 그런 식의 축복을 하지 말란 법은 없지만, 나이가 지긋한 국립대 교수이자 전도사님이신 그분의 기도에서는 자신이 머리임을 만족하며 머리 되게 하신 이에게 ‘저들에게도 나와 같은 축복을 달라’는 여유가 느껴졌다.
차라리 여기 있는 모두가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해달 라거나 가정의 평안을 갖게 해달라는 등 복을 기원하는 기도였으면 괜찮았을 텐데..... 그런데 머리와 꼬리는 다르지 않은가.
앞에서 말한 류의 기도가 모든 사람의 평안을 비는 기도라면 ‘머리와 꼬리’는 누군가는 분명 꼬리가 되어야 하는, 즉 타자화되는 누군가가 있어야 하는 그런 기도 아닌가. 그런데 여기에 있는 모든 아이들이 꼬리는 아니고 머리만 되게 해달라니….
그럼.. 꼬리는 누가 해?
'꼬리의 삶'의 대해선 왜 아무도 얘기해 주지 않았을까. 대다수가 꼬리가 되어 살아가는데 왜 머리의 삶만을 이야기하는지, 머리가 되지 못한 꼬리는 그래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이야기하고 함께 상상해 봤으면 좋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