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배우에게 온 메일을 생각하며
“혹시 오늘 제가 실례가 되었거나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면 사과 말씀드리겠습니다."
2021년 첫 인터뷰. 인터뷰이가 아닌 책 관계자로 만난 모 배우가 메일을 보내왔다. 세상에나 유명 배우에게 메일을 받다니. ‘아이고 참 영광이네’ 싶은 생각도 잠시, 메일을 다 읽고 가장 먼저 한 생각은 '음....혹시 내가 뭐 잘못했나?'.
천성이 무뚝뚝한 데다 긴장이라도 하면 더 로봇이 되는 나. 어려서부터 주변인들에게 자주 오해를 샀다. 예뻐서 예쁘다고 말하면, “나를 위해 억지로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돼”라며 놀림받기 일쑤였고, 나름 장난을 친다고 내뱉은 말에 상대가 상처를 받은 적도 여러 번. 아무런 의도가 없었던 나의 어떤 행동 때문에 '아, 쟤는 나를 싫어하는구나' 또는 '내가 불편하구나'라고 생각했다며 친해진 후에 웃으며 말하던 사람도 있었다.
오해받고 유쾌한 사람이 있을까. 나도 마찬가지였다. 내 마음이나 생각이 충분히 전달되지 않고, 그로 인해 상대가 불편함을 느낄 때면 내 안의 방어 본능이 꿈틀대고, 변명하는 자아가 활성화됐다. 나는 그럴 의도가 없었으므로 무죄. 내 진심을 알아주지 않는 당신들은 유죄. 그렇게 피해자를 자처했다.
언제부터였을까. 내 몫이 더 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발신이 엉망인데 수신이 잘 될 리가. 발신자로서 너무 미숙한 사람이었다는 걸, 수신자에게 너무 큰 기대를 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마음과 의사를 정확하게, 효과적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미숙함, 그럼에도 나를 제대로 알아주길 바라는 아이 같은 마음이 내게 있었구나... 내 몫이구나.
20여 년을 이렇게 살아왔는데 이를 어쩌나. 갈 길이 멀겠다 싶었지만, 다른 도리는 없었다.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해도 조금씩, 조금씩 다정함을, 표현을 연습하는 수밖에.
요컨대, 상대를 따뜻하게 대해주는 일상적인 습관이 중요합니다. 지금 이 순간 두 사람의 감정이 아무리 뜨거워도, 그 애정이 따뜻함의 습관을 만들어주지는 않을 겁니다.
김영민 교수의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에서 발견한 이 문장은 내 결심에 힘을 실어 주었다. 인생이 끊임없는 반복이라면 반복으로 형성된 습관이야말로 곧 나 자신이고, 내 인생이니까. 그래서 매일 조금씩, 다정함을 연습하기로 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매일 만나는 동료와 친구에게 다정하지 못했던 날에는 머쓱하고 아쉬워하는 나를 달래며 생각했다. ‘아직 연습이 부족하군...'
조금이라도 더 빨리, 많이 다정함을 연습했더라면 하나뿐인 언니가 힘들어하던 그날 밤, 내가 가장 다정해야 했던 그 순간에 언니를 안아줄 수 있었을 텐데. 어쩌면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게 전부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나의 부족한 다정함이 못 견디게 아쉽다.
"함께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혹시 저한테서 어떤 불편해하는 기색을 느껴서 걱정하시는 건가 싶어서 마음이 쓰이네요. 충분히 잘 챙겨 주셔서 저는 아주 편안했습니다. 염려 안 하셨으면 좋겠어요"
조심스럽게 온 메일에 나도 조심스럽게 마음을 담아 답장을 보냈다. 그가 정말 나한테서 불편해하는 기색을 느껴서 이런 메일을 보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덕분에 나는 한 번 더 '다정함 연습하기'라는 인생의 과제를 확인했고, 한 걸음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