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설하는 글, 정말 쓰고 싶지 않지만..
1.
현재 시각 10시 27분. 결국 노트북을 열었다. 종일 몸속에 떠다니는 말들. 어떻게든 꺼내 놓아야겠다 싶어서 무작정 브런치에 접속했다. 하고 싶은 말, 할 수 있는 말, 해야 하는 말들이 많은데 막상 글로 꺼내 놓으려고 하면 도무지 정리가 안 된다. 능력 부족이기도 하겠지만, 확실히 요즘 들어 무언가 쓰는 게 어렵다.
어디서에서 막힌 걸까. 피가 흐르는 혈관처럼 내 몸속에 글이 떠다니는 '글관'이 있다면 나는 지금 체한 게 틀림없다. 더부룩하고 답답한 느낌. 영락없이 소화불량인 상태인데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나. 당장 읽어야 할 책이 두 권이나 있는데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활자를 욱여넣는 찝찝한 심정이다. 배설하는 글, 별로 쓰고 싶지 않은데 오늘은 도무지 안 되겠다.
2.
SNS를 보면서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은 '이 사람들은 어떻게 불특정 다수에게 이런 이야기들을 할 수 있는 걸까?'다. '비밀글만 쓰면 늘지 않는다'는 은유 작가의 말을 좋아하고 믿으면서도 선뜻 따르지 못하는 나로서는 SNS라는 광활한 곳에 자신의 존재를 여과 없이(없는 것처럼 보이는) 드러내는 사람들이 대단하고 신기하다. 그들이 보기엔 대단할 것도 없으면서 꽁꽁 싸매고 있는 내가 더 신기할지 모르지만. 가끔은 그런 사람들의 거침없음이 부럽기도 하다. 이 대목에서 문득 <채널예스>에 실린 노석미 작가의 말이 떠오른다.
"누가 읽어줬으면 좋겠고, 읽기에 나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만 올려요. 기본적으로 어떤 작업을 한다는 건 무대에 벌거벗고 올라가는 거예요. 아무리 여러 가지 장치를 만들어서 자신을 숨기려고 해도 독자들은 알죠. 이렇게 무서운 독자와 관객 앞에서 옷을 벗을 수 있을 정도로 자신 있는 사람이 작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전시를 하고 책은 내는 걸 결국 자신을 마주하는 일인 것 같아요."
3.
글 벗, 책 친구가 간절한 요즘이다. 좋아하는 책에 대해 말하기. 책을 읽고 소감을 나누기. 요즘 어떤 책 읽냐고 물어봐 주기. 어떤 이에게는 일상인지 모르는 이런 활동이 내게는 돈과 시간을 들여 애써 찾아야 하는 것들이다.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이런 이야기들을 주고받는 관계가 있으면 좋으련만... 욕심인 걸까?
어정쩡한 사람이 된 것 같다. 경계에 있는 느낌이랄까. 책 동네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그 속에서 작은 역할을 하고 있지만, 일상의 대부분은 책과 전혀 상관없는 곳에서 평범한 직장인으로 일하는 나. 마치 몸은 여기에, 마음은 저 먼 곳에 있는 것 같다. 이런 생각이 들 때면 씁쓸하고 외로워진다.
4.
야심한 밤. 결국 참지 못하고 몸속에 떠다니는 글을 배설하고 나니 제목을 어떻게 써야 할지 난감하다. 내 브런치를 구독하는 몇 안 되는 독자분들께 (보지 않을 수도 있지만) 죄송한 마음. 그래도 이런 공간이 있어서 위로가 되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