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뭐가 소중하지?
골룸의 한때 이름은 '스미골'이었다.
친구가 우연히 '절대 반지'를 발견했을 때, 스미골이 그 반지에 마음이 빼앗겼을 때,
'반지'에게 마음을 빼앗겨 버린 스미골은,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살인'을 저지른다.
심지어 죽은 친구의 시체 앞에서, 반지를 소중히 만지며 최고의 유행어, "My precious!"를 외친다.
'내 옆의 친구'와 '반지' 앞에서, 골룸에게 더 소중했던 것은 바로 '반지'였다.
더 소중한 것을 향해 골룸은 선택을 한다. '살인'. 그리고 '괴물화'!
중요한 분기점에서, 무엇을 더 소중히 여기고,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인생이 전개된다.
넷플릭스 드라마 <스위트 홈>과 관련하여 <괴물화의 원인을 찾을 수 없는 이유-내 흐르는 코피를 감춰라>라는 글을 쓴 적 있다. (*브런치북, 영화 속 감춰진 관계의 비밀코드1, 8화)
'나도 언제든 괴물화가 될 수 있다'는 것, 괴물이 되는 사람과 아닌 사람의 명확한 경계선이 없다는 것!
<반지의 제왕> 속에는 괴물과 거리가 멀어보이는 인물들이 수없이 등장한다.
갈라드리엘은 프로도가 내미는 반지 앞에서 순식간에 '괴물화'가 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넌 어둠의 왕 대신에 여왕을 섬겨야 할 거다! 어둠이 아닌 새벽처럼 아름답고 두려운 존재! 바다처럼 위험한 존재! 대지의 기초보다 더 강한 존재! 모두가 날 사랑하고 동시에 절망하리라!
반지에 대한 욕심으로 순간 이런 어마어마한 말을 남기지만, 다행이도 요정 여왕은 금방 정신을 차린다.
프로도의 다정한 삼촌, 빌보 또한 반지에 대한 집착과 탐욕을 버리지 못해 순간 '괴물화'가 된다.
"내 반지 내놔!!" 하면서.
다행이도 그 역시 얼른 정신을 차리고 자신의 모습을 부끄러워한다.
그 어떤 순간에도 신의를 지키고 선을 실행할 것 같은 아라곤, 그 대단한 영웅 아라곤 또한,
프로도가 홀로 반지와 있는 모습을 보았을 때, 순간 반지의 유혹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물론 아주 잠시.
다른 인물들처럼 '포악한 괴물'같은 얼굴로 변하지도 않는다!
반지원정대 멤버로서 프로도를 지켜야 했던 보로미르는, 반지의 유혹에 넘어가 프로도에게 강제로 반지를 빼앗으려고 한다. 프로도는 반지를 이용해 도망가고, 잠시 미쳐 있었던 보로미르는 오크들의 공격을 받고 죽음을 맞이한다. 죽어가며 뒤늦게야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지만, 보로미르는 유일하게 '반지 때문에 괴물화가 될 뻔한 인물들' 중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프로도의 괴물화 순간은 너무나 많다!
너무나 당연하다! 반지 운반자이니까!
주변 사람 모두를 '괴물'로 만드는 반지를 직접 몸에 지니고 다니는데!
그러고보니, 프로도, <스위트 홈> 속 '특수감염인' 현수와 뭔가 연결되는 구나!
모두를 괴물로 만들 수 있는 '반지'를 짊어지고 살아가면서,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아야한다는 아이러니!
'괴물'의 무시무시한 힘과 '사람'의 자제력을 동시에 지니고 살아가는 특수감염인 '현수'!
누구보다 괴물이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인물에게 주어진,
'모두를 괴물로부터 구원하라'는 미션!
우리가 짊어진 삶의 아이러니!
이러한 프로도를 늘 일깨워주는 인물, 프로도의 괴물화 순간에 그 옆을 지켜주는 사람, 바로 '샘'이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하나 막막함이 몰려올 때,
다시 나에게 움직일 힘이 남아있을까? 라는 의심이 몰려올때,
<반지의 제왕 : 두 개의 탑> 2편에서 '샘'이 '프로도'에게 해주었던 말이 떠오르곤 한다.
보로미르의 동생 '피라미르'에게 붙잡혀 포로 신세가 된, 프로도, 샘, 골룸.
거기에 나즈굴까지 나타나 프로도는 또 한번 괴물화의 위기에 놓이고,
샘은 역시나 프로도를 구해준다. 그가 괴물이 되지 않도록.
정신 차린 프로도는 말한다. 더는 못해먹겠다고.
I can’t do this, Sam.
그러자 샘이 답한다.
나도 알아요. 처음부터 잘못됐어요. 이곳에 오는 게 아니였다구요. 근데도 우린 왔어요, 위대한 이야기의 주인공처럼!
샘은 계속 말한다.
"암흑과 위험으로 가득한 이야기와 끝부분이 걱정돼서 결말을 알기 싫었던 그런 이야기의 주인공처럼! 수없이 많은 나쁜 일들이 일어나 이제 세상은 옛날로 돌아갈 수 없어요. 하지만 이토록 두려운 시간조차 한순간 지나가는 과정일 뿐이에요. 암흑은 걷히기 마련이죠. 새 날이 밝을 거니까요. 태양은 더욱 눈부시게 빛나구요. 당신이 기억하는 옛날 이야기 속에는 큰 뜻이 담겨있어요. 어릴 적엔 이해하기 어려웠겠지만요. 그런 이야기가 떠오른 이유를 이젠 이해해요. 이젠 알겠어요. 옛날 이야기 속의 사람들은 선택의 기로에서도 흔들리지 않았어요. 끝까지 지켜내야 될 소중한 무언가가 있기에."
이 말이 계속 맴돈다.
이어지는, 프로도의 질문,
우리에겐 뭐가 소중하지?
마치 나에게 하는 질문 같다. 갑자기 멍해진다....
나에겐 뭐가 소중하지?
괴물화가 될 것이냐 말것이냐의 순간, 그 선택의 기로에서 흔들리지 않기 위해,
괴물이 되지 않고 살아있는 삶을 살기 위해 나 스스로 확실히 알고 있어야 할 것!
바로, 나에게 소중한 것! 내가 끝까지 지키고 싶은 것! 내가 끝까지 지킬만한 가치가 있는 것!
나는 너무도 엉뚱한 것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온 것이 아닐까.
끝까지 지킬만한 것이 아닌 것에 목숨을 걸고 많은 힘을 쏟은 것이 아닐까.
선택의 기로에서 매순간 흔들리고, 넘어지고, 멈춰있고, 정체되어 있고, 나아가지 못하는 것.
엉뚱한 것을 지키고자 했기에. 엉뚱한 것을 소중히 여겼기에.
남에게 어떻게 보일지, 어떻게하면 더 잘나 보일지, 어떻게하면 더 폼이 날지,
거기에 신경쓰는 동안, '더 가치있게, 끝까지 지켜야 할 나만의 소중한 것'에 대한 확신이 부족했다.
남들이 좋다는 것을 덩달아 좋아하면서, 그것을 소중하게 여긴 것은 아닌지...
내것이 아닌 '반지'를 탐하면서, 그것이 "My precious!" 라고 외치는 골룸.
나와 크게 다를 바 없다.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길로 가겠지. 골룸처럼.
골룸이 되느냐 마느냐를 시험받는 선택의 순간은 계속 찾아올 것이다.
요정 여왕처럼, 빌보처럼, 아라곤처럼, 보로미르처럼, 프로도처럼... 수많은 영웅들처럼...
"위대한 옛 이야기 속 주인공"처럼, 선택의 기로에서 흔들리지 않고 나아갈 수 있는 인생을 살기 위해서.
잠시 흔들려도 얼른 정신차리고 바른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나에겐 무엇이 소중한가>, 나 스스로 제대로 알아야겠다.
진짜 "My precious!"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