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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이 동시에 아프시다면?

비상사태를 버텨나가는 태도에 관해

by 나지영

7월 중순 어느날.

그렇게 건강하고 강인하던 친정 아버지가 갑자기 뇌종양 판정을 받으셨다.

림프종(뇌암)까지...

판정을 받고 한 달이나 지난 8월 중순이 되었지만, 여전히 항암 치료 시작도 못했다.

그 사이 아버지의 증상은 점점 심해진다.

뇌가 병드는 것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것은 너무나 충격적이다.

그 강하던 아버지가 한순간에 낯선 사람으로 변해버리는 것을 실시간으로 지켜봐야 한다.


그나마 어머니가 계시고, 딸 2, 사위 2이 돌아가며 연차를 쓰고, 어떻게든 시간을 만드니,

아버지 케어 시스템은 나름 안정적으로 굴러가고 있었다.


역시..인간의 교만함이란. 왜 모든 일이 우리 생각하는 범위 안에서만 일어날 것이라 가정하는가.

왜 이정도면 됐겠지라고 쉽게 단정하고 마는가.

인간이란 원래 그런 존재이겠지.

"나에겐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겠지"라고 막연히 우겨버리는 것!


잠시 퇴원한 아버지와 단 둘이 집에 계시던 어머니는,

식탁 위에 있는 강냉이를 드시러 가셨다가 몸을 돌리면서, 그자리에서 주저앉아버리셨단다.

그대로 고관절 뼈가 부러지고, 119에 실려 그대로 입원행. 철심을 박는 대수술. 이제 몇 달 간은 움직이시지 못한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동시에 자녀들의 절대적 돌봄을 필요로 하는 상황이 되었다!!

왜 이런 상황을 살면서 단 한번도 상상해 보지 못했는가!!!!


딸 2, 사위 2은 풀파워를 가동시켜 어떻게든 이 상황을 굴러가게 매일 매일 버티고 있다.

각자 직업이 있고, 어린 자녀들도 있으니 상황은 더 복잡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각자의 풀파워를 쓰고 있다. 어떻게든 이 상황을 극복하겠노라 다짐하면서!


앞으로 더더욱 우리 상상력의 범위를 넘어서는 일들이 기다리고 있다. 확실하다!

매일매일 발생하는 예상치 못한 사건을 마주하며 나의 상상력의 한계를 절감한다.

교만하지 말자. 교만하지 말자.

세상은 나 편한대로, 나에게 익숙한대로, 내 comfort zone에 맞춰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


누리고 있던 편안하고 안정된 상태가 영원하길 바라지만,

그것은 정말 지극히 평범한 날, 너무나 당연한듯 갑자기 순식간에, 펑!하고 흩어진다.

아이들을 데리고 외출하는 것은 이제 한동안 생각도 할 수 없게 되었다.

내가 누리던 나만의 여가생활도 이제는 불가능한 것이 되었다.

당연하던 것은 이제 없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지?"는 아무 소용 없는 공허한 말이다.

그런 일은 누구에게나 생기는 것이다. 내가 예외라고 생각하는 것이 교만이다.


아이들에게 말했다. 지금은 비상사태라고. 전시상황에 준하는 비상사태라고!!

비상사태에는 비상사태 모드로 살아가야지.

모드를 바꾸지 못하면 망하는 거겠지.

비상사태에서는 모든 것이 내 뜻대로 흘러갈 것이라 쉽게 우겨버리는 교만함과 상상력의 한계를 극복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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