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량한 위로' 안에 감춰진 '깍아내리기식 비교'
"키 너무 큰거 안좋은 거야."
내 아이는 7세이다. 또래에 비에 키가 힌참 크다. 보통 초등학교 2학년 정도의 키로 본다.
나는 그 점이 썩 마음에 든다. 키가 커서 나쁠 건 없지.
어딜가나 키가 커서 주목받는다. 2~3살 위의 아이들 보다도 키가 크거나 비슷하니까.
지인들과 모여 있었다. 나와 내 아이, A와 A의 아이, B.
A의 아이는 8살이다. 그 아이는 내 아이보다 키가 작았다.
A가 말한다.
"우리 애가 나이는 1살 더 많은데, 키가 더 작네...."
나는 그냥 조용히 웃고 만다. 익숙한 상황. 딱히 코멘트를 할 것은 없다.
그때, 옆에 같이 있던 B가 사뭇 진지하게, 속삭이듯 A에게 말했다.
"키 너무 큰거 안좋은 거야."
엉? 뭐지?
왜 굳이 저런 말을?
A가 아이의 작은 키 때문에 속상해 하는것 같아서?
그래서 위로라도 한답시고 그런 말을?
그럼 키가 큰 우리 아이는?
뭐가 안좋지?
나도 키가 큰데, 키가 커서 뭐가 안좋았었지?
아무리봐도 상식적으로 그런 말을 왜 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이들도 있어서 뭐라 말을 이어 붙이지는 않았다.
"키가 큰게 대체 어떤 점에서 안좋아?" 라고 유치하게 따질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B는 왜 그랬을까.
B는 그 말을 하면서 스스로 잘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A를 위하는 오지랖이 다른 사람에게는 가시가 되어 박힐 수 있음을 전혀 보지 못했다.
그저 자기가 그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덜 가진 것 처럼 보이는 사람'의 편을 들어준 것이라는 생각에만 빠져 있었겠지. 그래서 자신은 좋은 일을 한 것이라고. 그 상황에서 적절한 말을 한 것이라고.
그 말이 가만히 있던 나에게는 괜한 가시가 되어 박힐 거라는 것을 1도 생각 못한 것이 틀림없다.
나에게 아무렇지 않게 다른 부탁을 하며 희희거리고 웃었던 걸 보니.
상대적으로 자기 눈에 '더 가진 사람'은 죄책감없이 깎아내려도 괜찮다고 여기는 것이, 보통 사회적으로 '착하다'고 평가받는 사람들이라는 점을 나는 정말 많이 목격해 왔다. 스스로 착한 오지라퍼들.
온갖 겸손떨며 '아이고, 아닙니다 아닙니다' 자신을 낮추면서, 사실은 자기 기준에 '상대적으로 더 가진 자'들을 아무런 죄책감없이 쉽게 깎아내리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자신은 그것이 '깍아 내리는 행위'임을 모르겠지. B처럼 누군가를 위하는 행위라고 착각하겠지. 자신은 좋은 편이라고 철썩같이 믿고 있겠지.
키가 큰 것을 선호하는 문화권에서,
키가 큰 사람은 키가 작은 사람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가진 사람'으로 여겨지기 쉽다.
상대적으로 '덜 가진' 자를 위로하기 위해, '더 가진' 자를 깎아내린다. 아무 죄책감없이.
키 작은 아이로 속상해하는 엄마를 위로하기 위해,
키 큰 아이 엄마의 마음에 가시 하나 남겨 주는 것은 별일 아니라는 듯.
어떤 부족함에 대해 속상해 하는 사람을 위로하는 것은 괜찮은 일이다.
그 좋은 일을 하는데, 왜 굳이 다른 누군가를 깎아 내려야 하는가.
우리가 평생 비교 문화 속에 살다보니, 위로도, 비교로 해야하나 보다.
비교없이, 뭔가를 깎아내림 없이, 그 자체가 지닌 가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인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