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쯤에 내가 정신과 문을 두드린 이유

"왜 너는 내일이 없는 것처럼 사니."라는 물음에 답하며

by 렉 걸린 일상



"왜 너는 내일이 없는 것처럼 사니."



나를 비난하는 말이 아니라, 나를 진심으로 아끼던 이가 건넨 말이었다. 어떤 일에 극단적으로 몰입할 때면, 다른 사람 눈에는 곧 쓰러질 것이 뻔히 보이는데 정작 나만 몰랐다. 오죽하면 아프다고 거짓말이라도 하고 제발 좀 쉬라고, 주변에서 나를 붙들었을까.


그 이야기를 스무 살에 처음 들었는데, 마흔이 다 되도록 나는 그 '하얀 거짓말로 얻는 휴식'이라는 것을 열 번도 채 성공해보지 못했다. 왜 솔직하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할까. 이것도 ADHD 증상 중 하나인 듯하다. 상대방이 거북해할 정도의 솔직함. 대신 진짜로 몸이 아플 때까지 사방팔방 에너지를 흩뿌리며 난리를 치다가, 결국 몸이 고장 나거나 마음이 처참히 무너지고 나서야 멈췄다.


내가 무언가 남들과는 다르다는 것,

아니 모자라다는 것은 진작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늘 내 나약한 정신력을 원망했다. 내가 너무 좋았다가도, 그런 내가 너무 싫었다.


100일 동안 뜨거운 꿈을 꾸다가도, 어느 순간 "역시 난 안 되나 봐"라며 털썩 주저앉아 버린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내 삶을 지배해 온 지독한 반복의 굴레였다. 에너지가 차오를 때는 세상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 몰입하지만, 불꽃이 꺼지면 며칠이고 어두운 방 안으로 깊게 침잠했다.


스무 살의 나는 고시원 좁은 침대 위에서 그 패턴을 완성했다. 카페 알바, 과외, 학과 공부로 나를 몰아붙이다가도 사흘 넘게 하루 한 끼로 연명하며 영화 속으로 도망쳤고, 끝내 잠 속으로 숨어들었다.


그렇게 며칠 만에 겨우 밖으로 나오면 쏟아지는 햇빛도, 땅을 딛고 걷는 느낌도 생소해 마치 다른 행성에 불시착한 기분이 들 정도였다. 세상은 여전히 같은 속도로 흐르는데, 나만 멈춰 있다가 억지로 태엽을 감아 끼워 맞추는 어색한 복귀였다.


극단과 극단을 오가는 시계추


내 삶은 언제나 양극단 사이를 위태롭게 오가는 시계추 같았다.


10대에는 활자 속 미지의 세계를 탐닉하며 지적 갈증을 채웠고, 20대에는 몸의 감각에 몰입하며 억눌린 에너지를 분출했다. 그리고 30대에는 아이의 성장이 주는 찬란한 환희와 육아의 처절한 무게 사이에서 그 어느 때보다 격렬하게 요동쳤다.


끝내 인내를 배워 마음이 무너져도 최선의 최선을 다해 억지로라도 몸을 움직였지만, 내 티 나는 억지춘향에 주변의 날 선 비난으로 이어졌고 결국 몸도 견디지 못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한 달에 한 번,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는 몸살이 찾아왔다.


마흔, 숨길 수 없는 '나'를 마주하다


마흔에 가까워진 지금,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극단적으로 솔직하거나 아예 입을 닫아버리는 나, 무섭게 몰입하다가도 돌연 잠수 타버리는 이 패턴은 더 이상 내 정신력만으로 교정될 수 없다는 것을.


열 살이 된 아이는 이제 엄마의 눈빛에서 미세한 흔들림을 읽어낸다. 더 이상 때때로 찾아오는 이 깊은 우울의 늪을 아이에게 보여주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이제는 경제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조금 더 안정적이고 기복 없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불안함이 밀려올 때마다 못 마시는 술을 매일 같이 찾게 되는 나를 보며, 비로소 인정했다. 이건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내 뇌가 보내는 간절한 도움의 '신호'였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바로 정신과 문을 두드리기로 했다.

동아줄이 되어 줄 무언가를 간절히 찾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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