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2였던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 "넌 잘못이 없어."

나를 괴롭히던 경이에게 받은 편지

by 렉 걸린 일상



같은 중학교에 배치된 친구는 대성통곡,


나는 '이게 정말 울 정도로 안 좋은 일인가? 운이 없었네.' 하면서 배치된 중학교로 향했다. 아직도 등교 첫날, 위층에서 선배들이 던진 컵라면 등등의 쓰레기들이 떨어지던 모습이 생생하다.





[대책 없이 책 속으로 숨어버린 아이]


1학년 때는 운이 좋았다. 반 35명 중 전교 20등 안에 드는 모범생들이 한 반에 10명 이상 배치된 반에 편성되어 무난한 학교생활을 보냈다. 문제는 2학년, 그 아이들이 골고루 섞여 배치되고 나서야 정말 '야생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ADHD의 과몰입, 표적이 된 독서광]


한 살 일찍 입학한 데다 또래보다 사회성 발달도 늦었고, 지금 생각하니 ADHD 성향 독서광이었던 나는 반이 바뀐 첫날부터 친구 사귈 생각은 안 하고 그냥 책을 보고 있었다. 주변 친구들과 자연스레 사귀기는 했지만, ADHD 기질이라는 것이 과몰입으로 주변머리가 없어지는 순간이 종종 오기 때문에 도무지 아예 눈에 안 띄는 삶이란 거의 불가하다. 나도 한 아이의 눈에 띄게 되면서 그 친구의 집요한 괴롭힘의 대상이 되었다.




[힘들다는 말을 죽도록 싫어했던 이유]


그 괴롭힘을 당하는 와중에도 분명히 같이 아침에 등교하고 점심 먹고 영화 보러 가는 친구가 있었다. 하지만 그 친구와 나를 괴롭히는 아이에 대해 대화를 나눈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왜 그렇게 내가 힘들다는 말을 하는 걸 죽도록 싫어했는지 모르겠다. 지금도 상대방이 무리하는 걸 먼저 알아주지 않는 이상 '희미한 미소'로 힘들어요 한두 번 말하고 몸이 아프고 결국 멀어지는 수순으로 관계가 정리된다.


그 당시 내가 당한 괴롭힘은 굳이 내 이름을 성적인 표현을 섞어서 부르며 놀리고, 심지어 친구들 앞에서 내 바지를 벗기기도 했다. 꾸미는 데 전혀 관심이 없었으니 외모로 비웃는 일은 다반사였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내가 반응이 없어서 언제까지 안 울고 버티나 이런 마음이었을 수도 있겠다. 막상 쓰려니 많이 잊어버렸지만, 다만 학교 교실에서




'너 때문에 죽는 거야.' 하고 뛰어내릴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던 기억이 난다.





[무시당하지 않을 유일한 방법, 공부]


그 당시 나는 살면서 가장 낮은 학교 시험 점수를 기록했었는데, 반에서 5등이었다. 성적표를 들고 놀이터에 앉아 혼날 각오를 다지고 엄마한테 갔더니, 내 각오가 무색하게 내가 상상한 이상으로 혼났다. 따귀를 한 대 시원하게 맞고(인생 유일한 싸대기 경험이다. 설마 또 맞을 일은 없겠지!?) 동네 수학 전문학원에 등록했다.



그때 부모님께 나의 어려움을 말했느냐고? 당연히 안 했다. 지금까지도 안 했다.





[내가 아이를 키우며 가장 두려운 포인트]


나에게 가장 두려운 일은 내 아이도 어린 나처럼 '나에게 힘든 걸 말하지 못하면 어떡하지.'라는 고민이다.


어쨌든 제일 못 본시험임에도 불구하고 '아 얘 공부는 잘하는구나.' 하고 나를 괴롭히던 무리가 놀라는 게 느껴졌다. 그 순간 '아, 내가 무시당하지 않을 유일한 방법은 공부구나'라고 각인되었다.


나는 이런 동기부여로 공부하게 되는 것도 싫고, 각자의 재능을 무시하고 국영수사과로 줄 세우기식 분위기도 싫다. 이런 스트레스가 누구에게 어떤 이익이 되는가? 어쩌면 이제야 내가 그토록 쓰고 싶은 글을 쓸 수 있는 것도 이제야 그 트라우마에서 거의 벗어나기 시작해서인지도 모른다.




[멈춰버린 폭풍 뒤에 남은 것들]


그래도 살길은 있었다. 상대방이 왼뺨을 때릴 때 맞아줄 만해도 한 번 맞아주면 10번, 100번이 될 수 있으니 받아쳐야 한다는 걸 그제야 배웠다. 그로 인해 중3 때부터는 본격적으로 공부를 열심히 해서 고1 때는 1분 1초 공부하는 학생이 되었다. (덕분에? 고1 때는 수능 모의고사 성적으로 서울대 합격권에 있기도 했다!)




[나를 괴롭히던 '경'이에게 받은 편지]


폭풍의 중2 생활을 끝마칠 때, 나를 괴롭히던 '경'이는 나에게 편지 하나를 썼다. 어머니가 재혼하셔서 새아버지가 생겼고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 너한테 그렇게 한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허탈했다. 지금 생각해도 가장 슬픈 부분은 그 당시 내가 부모님에게 정서적으로 의지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나와 우리 딸 사이에서는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며, 지금은 주변의 멋진 선생님들과 정서를 나누며 서로 힘을 주는 관계를 배워가고, 육아서적을 읽고 딸과 데이트를 하며 노력할 뿐이다.


오늘도 나는 그때의 나를 생각하며 꼭 안아준다. 살아줘서 고맙다고. 그리고 기회가 생긴다면,


나와 같은 학생들의 손을 꼭 잡아주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아무리 힘들어도 다른 사람을 괴롭히며 자신의 고통을 해소하는 일을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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