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반전을 위한 호루라기를 불다.

새벽 그리고 독서.

by 세렌디퍼

소주의 첫잔은 쓰다. 그런데 신기하게 두번째 잔, 세번째 잔이 될 수록 물처럼 느껴지다가 기어코 달달해진다.(그 달달함은 뇌가 알코올에 젖어 일어나는 마취현상이라는 사실은 이성적으로 알고 있다.)


책장의 첫장은 소주의 첫잔처럼 아직 불편하고 낯설다. 작가의 언어에 익숙하지 않으며 작가의 의도에 다가서기 위해 애쓰는 구간이다. 그 구간을 지나가면 어느새 물이 되고, 취하기 시작했다.

적막한 새벽녘에 만나는 성공자들의 스토리에 나를 입히면 내가 마치 그 사람이 된 듯 성공과 행복감에 흥분되었다. 그리고 점차 10분이 20분, 30분, 그리고 한 시간이 되는 기적이 일어났다. 그야말로 미라클이다.


당연히 그 시작은 빨라지기 시작했으며 아침 연애가 '새벽 연애'가 되어 버렸다. 종종 혼자 고요히 찬 새벽 공기도 마시며 걷기도 해보고, 감사일기도 끄적거려보며 그렇게 점점 나의 새벽 데이트는 깊어지고 진해졌다.


시나브로 나의 인스타그램이라는 공간에는 자기 계발과 꿈을 향해 매일 새벽을 여는 사람들로 분주했다

긍정확언을 필사하는 사람, 매일 독서를 하는 사람, 매일 운동을 하는 사람, 매일 명상을 하는 사람, 매일 다른 사람을 돕고자 하는 사람, 매일 동기부여를 위해 컨텐츠를 제작하는 사람 등등..


'세상에, 이렇게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유튜브를 처음 접했을 때 놀란듯, 또 다른 차원의 세상 사람들이 북적거리고 있는 이 곳에서 그들의 열정에 경이로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동안 나는 무엇을 위해, 최종 목적지가 어딘지도 모른 채 인생이란 그 길을 무심코 걷고 있었던 것인가? 다시 오지 않을 나의 시간들을 나는 무슨 자격으로 허비했는가?


나의 항해는 선장도 없이 그저 바람에 따라 이끌려 가는 난파선이었다. 등대 따위의 필요성도 몰랐다. 그저 바다에 둥둥 떠있기만 해도 감지덕지였다. 작은 구멍으로 곧 배는 가라 앉을 수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채.

나의 자유의지보다 타인의 의지와 에너지대로 끌려다녔다. 나보다 상대방의 기준과 원칙에 나를 맞춰갔고,그렇게 인정을 받는 것을 갈구했다.


그러니 썩어빠져 악취를 뿜어내는 해결되지 않은 나의 문제들이 켜켜이 쌓여 화석이 되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나 이제 어떻게 살지? 제대로 폼 나고 멋있는 엄마와 내가 되고 싶어졌는데? 이왕 이렇게 된 거, 하고 싶은 거 하며 살고 싶어졌는데?"


내가 세상에 뱉는 "말"과 나에게 꽉 들어찬 "사고"가 어떠한 힘을 갖고 있는지, 무지했다. 입에 붙어있던 부정의 언어가 꾸준히 나를 부정적인 사건과 사고를 끌어당겨 지금의 나를 메이킹했다는 팩트를 직면하고야 말았다.


새벽의 독서가 나에게 이제 전반전을 종료할 수 있는 자격을 주었다.

그리고 나의 후반전을 위해 내가 호루라기를 부른다.


누구도 방해할 수 없는 나의 시절이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