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와 쓰기

달려라 하니처럼 .

by 세렌디퍼


아파트 저층인 저희 집 거실에서는 중학교와 초등학교가 훤히 보입니다. 아이들이 등교하는 모습, 체육시간 등이 다 보이고 들리죠. 점심시간에는 재잘대는 소리가 거실 안으로 넘어 들어오기도 합니다. 우리 딸들의 수다도 포함되어 있겠죠?



제 학교생활이 생각납니다.

저는 정말 몸치거든요.

운동신경이 유난히 특별한 사람이 있다면 저는 정말 몸치에, 잘 넘어져서 무르팍이 깨지는 것은 다반사였습니다.


그런 제가 잘하는 운동이 있었어요.


바로 100미터 달리기였습니다.


7~80년생 들은 "체력장"이라는 연중 학교행사가 있었던 걸 기억하실 거예요. 지금은 아마 기초체력검사 정도로 바뀐 것 같네요.


유난히 100미터 달리기에 진심이었습니다.

일단 한번 총소리에 뛰기 시작하면 "달려라 하니"가 된 듯 미친 듯이 달렸습니다. 누가 뒤에서 쫓아오고 도망가야 할 것 같은 절박함이랄까요? 잘 못 한 게 없는데 계속 채찍질이 , 빨갛게 달아오른 쇠다리미가 따라오는 것 같았어요.




그땐 잘 몰랐습니다.

왜 제가 유난히 다른 운동은 병맛이면서 달리기에 집착했는지요.

늘 이어달리기에 마지막 주자로 달렸고, 어떤 날엔 체육 선생님께서는 육상부 제안도 하신 적도 있었어요.

(아, 지역 대표로 경기에 나가서 수상한 적도 있네요.)





© joshgordon, 출처 Unsplash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습니다.

달리기를 하며 도망가고 싶었나 봐요.

지옥 같고 감옥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 다른 세상을 마주하고 싶었나 봐요. 그렇게 미친 듯이 뛰어가면 탈출구가 있을 거라 기대했었나 봅니다.

엄마가 보고 싶다 가도, 이런 세상에 태어나게 한 엄마가 밉고 원망스러웠으며 분노의 힘으로 나를 다독거릴 수 있는 것은 "달리기"였습니다.

그렇게 내달리면 결승선에 멈추지 못하고 한참을 남들보다 더 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결승선이 지나고 나면 슬퍼지더라구요.

'아, 종착역에 도착해도 똑같은 나일 뿐이구나.'




세상에 화가 나고 슬퍼서 달리기에 진심이었던 단발머리 여중생이 지금은 이렇게 이른 새벽 노트북 앞에서 '쓰기'로 '달리기'를 하고 있네요.


참 잘 살았습니다.

참 잘 살아내고 있습니다.


흔히 인생을 마라톤이라고 하죠.

전력질주만이 살 길이라 여겼던 무지를 버리고 전략질주를 하기 위해 오늘도 쓰고 읽습니다. '쓰기'에는 탈출구가 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