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나의 어머니.

착한아이가 되어야 해.

by 세렌디퍼

어느 순간부터 나는 어쩌면 이 모든 실타래를 먼저 꼬은 사람은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일지도 모른다는 왜곡과 편향된 사고를 갖게 되었다. 어느샌가 원망과 분노는 그 화살의 방향이 달라지고 있었다.

아직도 선명하다. 그날도 어머니는 전깃줄에 묶여 패대기 당하던 날, 이모와 외삼촌 등까지 우리 집으로 출동하셨던 날이다. 원망과 화가 가득 찬 이모의 한숨 섞인 한마디.


지 애미가 이렇게 죽도록 두들겨 맞을 때 애새끼들은 안 말리고 머했는교

남동생은 나를 붙들고 울기도 했다. 무섭다고 말도 하고, 내 소맷자락을 부여잡으며 눈을 질끈 감기도 했다.

그런데 정말 나는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는 일시정지상태, 얼음땡 놀이의 술래 같았다. 무섭고 두려웠던 감정 따위도 나에게 사치였을까? 유일한 나의 방어기제였다. 내가 나를 보호하고 지키는 방법.

하지만 나에게도 귓구멍이라는 게 있기에, 양심이라는 게 있기에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나를 원망했던 이모의 큰 소리는 나에게 큰 화살처럼 꽂혀 맴돌았다.




처음부터 동물원 울타리에 갇혀 지낸 사자는 자신의 정체가 사자라는 것을 평생 알 수 있을까? 태어난 이후 한 번도 제대로 된 저항을 본 적도 없는 상태였다면, 저항이라는 것 자체가 무엇인지 우리는 알 수 있을까? 나에게 '집'이라는 그런 울타리였다. 자유도, 사랑도, 존중도, 이해도 없던 울타리...그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저항'이라고는 그저 관찰자 시점으로 그들을 바라보는 것 밖에는 없었다.


나의 어머니는 4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 막내기질이 다분한 사람이다. 장녀인 나와 궁합이 맞지 않다고 느낄 때 나는 차라리 그녀를 막내이모쯤으로 생각해버리기도 한다. 누구나 그러하겠지만 본인의 감정과 상처에 집중되어 있으며, 따뜻하고 다정한 엄마의 모습보다는 젊고 철없는 엄마의 모습에 가깝다고나 할까?


그녀의 삶도 녹록지 않았다. 아니, 모든 것이 일찍 시작해 버린 결혼이라는 절차로 난장판이 되었다. 그녀도 힘든 삶의 쓰레기통이 필요했고, 당연히 가장 가깝고 나약한 우리 남매는 그 스트레스를 온전히 받아낼 수밖에 없었다. 특히 첫째였던 나에게 기대와 욕심을 내보이기 시작했으며, 당연히 초등학교 어린 나이의 나에게 '학교생활'의 일등을 바랐던 것은 어쩌면 당연할 지도 모른다.


그런 어머니의 바람대로, 초등 6년, 중고등 6년 한 번도 반장을 놓친 적도 없었으며, 국민학교 당시 말 잘 듣는 착한 어린이의 표상인 '선행상'을 줄곧 받아야 했다. 머리가 극히 좋은 편이 아닌 평범한 나였지만 초등학교 저학년 때도 잠이 오지 않는 효과가 있다며 초콜릿 한 박스를 사서 밤마다 까먹었으며, 그 꼬맹이가 12시까지 전과를 달달 외우며 밤을 이겨냈었다. 하루는 기말고사에서 처음으로 88점이라는 점수가 나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점수에 충격을 받은 나머지 우리는 차사고가 날 뻔했고, (학교와 집이 멀어 등학교를 직접 라이딩해 주시던 때다.) 그 후 집으로 돌아와 나는 초여름 베란다에 쌓여있던 음식물이 가득한 쓰레기통을 뒤집어썼어야 했다. 그래도 화가 덜 풀린 나머지 나의 교과서는 낱장이 되어 복구가 불가했으며 한참을 몸으로 그 화와 분노를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와 생각하면 나이 마흔셋에, 아이 둘을 키우다 보니 엄마의 마음이 전혀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다.

'풀어내고 싶었으리라.

울분을 토해내고 싶었으리라.

내 새끼들이 나보다 나은 삶을 살게 하고 싶었으리라.'


그러기에 나는 아주 적합한 상대였을까?




하지만 그들이 몰랐던 사실이 있었다.

난 그들을 통해 제때 배우지 못했던 것들을, 다행히도 사회에서(학교, 직장, 등등) 꽤 괜찮은 사람들에게 온전하게는 아니지만 나름 적당한 때에 적당한 사람들에게 배워나가고 있었다. 학교에서는 따뜻하고 좋은 친구들이 내 벗이 되어, 나의 어둠과 감정을 쏟아 낼 수 있도록 도와주었으며 선생님들께서는 경제적인 부분도 배려해 주시고, 응원해 주셨다. 그 밖의 아주 작은 일상 속에서 나는 감사함을 배워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천천히 혼자 삶을 살아가는 태도와 자세를 '안'이 아닌 '밖'에서 남들보다는 천천히 배우기 시작했다. 결손가정의 아이들의 대부분이 문제행동을 일삼는 청소년이 되진 않는다. 다만 그 결손과 결핍 사이의 좁은 틈새를 어떻게 메워나가느냐가 그들의 인생의 방향을 결정한다고 생각한다. 꼭 고통이 동반되어야 성장하고, 성공한다고 단정 짓지는 않지만 나는 적어도 고통이 주는 성장을 꼭 생각하고자 한다.


그래서 인생의 문제들이, 삶의 고통들이 밀려올 때마다 다시금 되뇐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강하게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