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어 번의 이혼 절차를 겪으면서 그들은 마침내 정말 남남이 되었다. 10살이 넘어 굴린 머리는 그저 그들이 남남이 되어 같은 공간에 숨 쉬지 않으면 될 일이라 여겼다. 난 그래서 내가 제법 성숙하고 똑똑한 줄 알았다.
하지만 어머니가 떠난 그 자리가 완벽하리만큼 완전한 내 자리가 될 줄 꿈에도 몰랐다. 어머니가 떠난 그 안방에 어떤 여자가 들어와 살기 시작했는데, 아버지라는 사람의 부연설명은 이랬다.
"집안 살림을 해 주시는 가사 도우미분이다."
그래서 그런가 보다 했고, 감사하다 생각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지 않아 동네 친한 친구 어머님이 지나면서 가엽다는 눈빛 가득 말을 건넨다.
"새엄마는 잘해주시고? 밥 잘 챙겨 먹고 다녀라이."
"새엄마요? 그냥 밥 해주시는 분인데요?"
말을 뱉는 순간, 알아챘다. 아니, 어느 날부터 안방에서 나오는 밥해 주는 그 여자를 달리 봐야 했다.
왜 나는, 물어볼 수도, 물어보지도 않았을까?
나는 울타리 안에 사자였다. 저항할지도 모르고, 내가 사자인지도 모르는 사자....
그렇게 친구의 어머니의 걱정스러운 한마디에 나는 모든 순간들이 이해되기 시작했고, 밥 해주는 아줌마가 아닌 새엄마로 그 여자를 살펴보게 되었다.
나의 두 번째 엄마, 김여사.
전래동화 속 계모라 하기엔 아름답고, 어질고 , 따뜻했던 엄마였다. 우린 계모와 전처 딸이라는 관계의 어색함보다, 수시로 생모의 빈자리를 메워야 했던 나를 불쌍히 여기는 연민의 관계부터 시작됐다.
그저 생모와 똑 닮았다는 이유로, 아니면 생모의 자리가 부족했기에 내가 그 자리를 채울 수밖에 없었다. 술을 마시든 아니든 그저 내 이름 석자가 불리면 엎드려 주먹을 불끈 쥔 상태로 밤을 지새우기 일쑤였다.
그런 나의 문제로 새로 결혼생활을 시작한 새엄마도 그와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다.
"내가 데리고 들어온 자식이냐? 제발 내버려 둬라."
그렇게 내 새엄마도 그와 싸우기 시작했다.
다름 아닌 나 때문에.
나의 재수 없음 때문에, 난 늘 혼자 밥을 먹어야 했고,
집안에서 어슬렁거리다가 걸리면 늘 폭언이 뒤따랐다.
당시 단독주택이었던 2층에, 계단소리만 나면 나는 방안에 숨어들었다.
파란들 가구의 쇠파이프로 맞던 날, 처음으로 한밤 중에 뛰쳐 나왔다. 단순히 살고 싶어 내복바람으로..
그리고 정신없이 뛰어간 뒷 동네의 할아버지 산소 앞에서 처음으로 엉엉 소리 내어 울며, 살려달라 외쳤다. 그리고 신기하게 잠시 잠들었었나. 참, 따뜻했다. 생전에 나를 가장 이뻐해 주신 나의 할아버지가 나에게 가장 안전한 울타리였다. 감사하게 그 밤을, 그래서 어머니가 떠난 이후 찰나의 숙면을 취했던 것 같다.
새벽즈음 깨어, 되돌아가는 길은 안개와 서리가 엉키었던 산행이었다. 명절이면 어른들과 차로 이동해야 했던 밤나무들이 가득한.. 그런데 나는 어제 그 길을 맨발로 축지법을 쓰듯, 날아왔다. 그때 힘이 생겼다.
'나에게도 안전한 곳이 있었어.'
이후 새어머니의 지속적인 나에 대한 애정과 관심으로 그녀의 재혼생활도 어두워져 가고 있었다.
그리고 정확히 10년이 지난 후,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했다.항간엔 그녀가 맞아죽었다는 소문이 돌았고, 치매 진단을 받아 지원금이 나왔지만 김여사에게 쓰여졌다고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다. 아버지란 사람은 또 젊은 여자를 데리고 와서 그렇게 셋이 살았다고 한다.
(난 고등학교 때 결국 집을 나와 친모와 거주하기 시작해서 이후 그녀의 삶에 대해 직접적으로 아는 것은 없었다.)
치매로 정신이 온전치 못한 김여사는, 그 젊은 여자의 속옷도 빨아주었다고 했다. 모든 것이 소문이길 바랬다.
나는 혼자 울 수도 없었다.그녀는 이미 몇 년 전부터 나의 기억이 희미해질 정도로 아파있었다. 친모에게 미안할 정도로,나에게 처음으로 따뜻한 엄마와 어른이 무엇인지 가르쳐준 나의 김여사.
나를 위해 싸워주고, 혼자 먹는 밥이 안쓰러워 또 나와 밥을 먹어주고, "딸"이라 흔쾌히 안아주던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