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여전해.

그래도 아버지라 여기고 싶었나 보다

by 세렌디퍼

나의 남편의 부고 소식은 고향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그곳은 아직 나의 친부가 중국에서 데려온 젊은 여자와 딸(10살 정도 되는)을 낳고 알콩달콩 사는 곳이기도 하다. 연락이 올 지도 모르겠다는 기대보다는, 혹시나 연락이 오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이 우위였다. 하지만 보기 좋게 내 예상을 빗나갔다..


시간이 약이라 했던가? 만에 하나, 그도 늙어지고 있으니 죽음으로 모두가 향하고 있는 이 길목에서 한 번쯤은 '후회'와 '미안함'이 있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망상을 하던 날도 사실, 가끔은 있었다.


누군가 내 등뒤로 말하곤 했다.

'나중에 자식 키워보면 부모 마음 알 거라고.'

과거의 나는 못 들은 척, 대꾸하지 않았지만 지금의 나는 지나가는 그 사람을 낚아채 세워 말할 수 있다.


"새끼를 낳아보니, 더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도 분명 존재한다고."



역시나 몇 개월이 흐른 뒤 남동생과 오랜만에 술 한잔 기울일 기회가 있었다.


"얼마 전에 통화했는데, 누나 칭찬하더라."

"응, 누가?"

"아버지가 나보고 누나처럼 독하게 잘 좀 살라고. 연락 좀 하지 말라면서. 그리고 누나도 앞으로도 이렇게 독하게 잘 살래~."


"또라이 새끼."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 한마디, 쓰린 속에 소주 한잔을 더 부어 넘겼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는 말이, 이럴 때 쓰나 보다.




최근 여기저기 칼부림 사건들이 난무했다.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모방범죄들로 나조차 어쩌다 가는 서울 나들이가 조심스러울 정도였다.


어쩌면 그가 나에게 행한 짓들은 '칼부림'과 비슷한 행위 아니었을까? 그땐 어려서 '칼'인지 몰랐고, 머리가 어느 정도 커서는 '칼'인지 알았지만 두려웠고 이제는 '칼'이 다시 날아들어도 괜찮을 줄 알았는데.


대답은 '아니었다'.


아마 어쩌면 나는 꼬부랑 노인이 되어 아무 힘도 없어 누군가의 도움이 철저히 필요한 약자의 모습을 상상하며 그렇게 진절머리 나도록 외로운 나날을 보내길 바랐는지 모른다. 그래서 나 혹은 동생이 지나가는 길에 그를 유연하고 당당하게 지나쳐가는 복수를 상상했었나 보다.


그런데, 역시나 그는 변하지도 늙지도 외롭지도 않다.

그리고 여전히 나를 향한 독설을 서슴지 않으니, 이 또한 변함이 없다.




난 아직 자신이 없다.

훗날 그의 부고를 들어도, 당당히 자연스럽게 우아하게 이 세상 다 해탈한 듯 그를 마주할 마음이 없다.


이제 독서와 끄적임으로 치유와 회복을 결정하고 시작했지만 당분간 나는 철저히 나의 '감정'을 읽어주고 알아차려주는 일에 우선순위를 두고자 한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이 치유의 쓰기 끝엔 내가 그를 용서하고 있길 간절히 바라본다. 그래야 내가 나를 지킬 수 있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