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느 여중생처럼 밀가루를 좋아했다. 그리고 우리 새엄마가 해주던 수제비를 정말 애정했다. 그런데 몇 날 며칠 수제비만 식탁에 올라온다. 이상했다.
그러던 어느 날인가, 전기도 나가버렸다.
그렇게 우리 집은 망해가고 있었다.
학교생활은 그럭저럭 여전히 잘해나가고 있었다. 학기마다 매번 주어지는 임원역할도 언제나 그랬듯 잘 수행하였고 학업 역시 중학교 때까지는 입력한 대로 출력값이 나오는 시기였기에 상위권을 놓치진 않았다.
그러다 중3 초였나.
학교에서 편성된 가칭 "영재반"이라는 곳에 담임선생님 추천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비평준화 지역이었기 때문에 원하는 고등학교를 입학하기 위해선 인근 각지에서 공부 좀 한다고 모여드는 아이들과 경쟁을 해야 했다.
p고등학교, 혹은 그 이상의 특목고를 가기 위한 아이들을 모아놓아 보충수업하는 반이었다.
나에게 집을 탈출하는 방법은 학교 밖에 없었기에 선뜻 선생님의 제안에 수긍을 했다.
하지만 막상 수업에 들어가니, 그 당시 학원 한 번 제대로 가본 적이 없는 나에겐 모든 시간이 외계어로 들렸다. 당연히 평가 점수는 엉망이었다. 담임 선생님께서 불러 문제집도 손수 마련해 주셨었는데.. 면목이 없었지만 난 그 반에서 이탈을 하였다.
망해가고 있는 집에서 추가적으로 들어가는 수업료나 교재비를 지원해 주는 것도 어려웠지만, 그래도 순간 원망 섞인 한숨도 나왔다. "학원도 한번 가 보고 싶다."
여느 아침, 아버지와 새어머니가 또 소란스럽다.
"아니, **이 보충수업료도 못 내면서 이걸 어떻게 갖다 줘요?"
내용인즉, 남동생 담임 선생님께 '촌지'를 전달하라는 아버지의 명령이었다. 나의 두 번째 엄마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또 한 번 아버지와 날을 세우고 있었다.
또 마음에 스크래치가 생겼다. 하지만 울진 않았다. 그저 이렇게 30년이 훌쩍 지났어도 선명하게 그날의 분위기, 목소리가 기억날 뿐이다.
자존심이 상하고, 마음이 무거웠다. 하지만 포기하진 않았다. 당신에게 복수하기 위해서라도 꼭 p고등학교를 가리라.
그렇게 시작되어 잠을 쫓는 각성제를 먹어가며 밤을 잊는 채 결국은, 원하는 고등학교에 입학을 하는 데 성공하였다. (생각해 보면 아마 턱걸이 합격이지 않았나 싶다.)
어렵사리, 온전히 혼자 공부해서 들어간 학교.
나름 소심한 복수라 여기며, 쾌재를 불렀던 몇 안 되는 내 작은 인생의 성공경험이었기에 내가 세상에 쓸모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착각까지 하게 되었다.
아버지가 진지하게, 내 이름 석자를 부르기 전엔.
"지금 우리 집이 너를 대학까지 공부시킬 형편이 안되니, 실업계로 전환해서 빨리 취직해서 네 남동생 뒷바라지나 해라."
늦은 밤 나도 모르게 어금니를 꽉 깨물었는데, 그 순간 밖으로 소리가 새어나간 건 아닌지 덜컥 겁이 났다.
그리고 주먹을 너무 꽉 쥐는 바람에, 내 손톱이 나의 손바닥을 흠집 내고 있는지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