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있는 자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
지나간 그 겨울을 우두커니라고 불렀다.
견뎠던 모든 것을 멍하니라고 불렀다.
희끗희끗 눈발이 어린 망아지처럼 자꾸 뒤를 돌아보았다.
미움에도 연민이 있는 것일까.
떠나가는 길 저쪽을 물끄러미라고 불렀다.
사랑도 너무 추우면 아무 기억이 나지 않을 때가 있다.
표백된 빨래처럼 하얗게 눈이 부시고
펄렁거리고 기우뚱거릴 뿐
비틀거리며 내려오는 봄 햇빛 한 줌
나무에 피어나는 꽃을 문득이라 불렀다.
그 곁을 지나가는 바람을 정처없이라 불렀다.
떠나가고 돌아오며 존재하는 것들을
다시 이름 붙이고 싶을 때가 있다.
홀연 흰 목련이 피고
화들짝 개나리들이 핀다.
이 세상이 너무 오래되었나보다.
당신이 기억나려다가 사라진다.
언덕에서 중얼거리며 아지랑이가 걸어나온다.
땅 속에 잠든 그 누군가 읽는 사연인가
그 문장을 읽는 들판
버려진 풀잎 사이에서 나비가 태어나고 있었다.
하늘 허공 한쪽이 스르륵 풀섶으로 쓰러져 내렸다.
주르륵 눈물이 났다.
내가 이 세상에 왔음을 와락이라고 불렀다.
꽃 속으로 들어가 잠이 든 꿈
꽃잎 겹겹이 담긴 과거 현재 미래
그 길고 긴 영원마저도
이생은 찰나라고 부르는가.
먼 구름 아래 서성이는 빗방울처럼
지금 나는 어느 과거의 길거리를 떠돌며
또다시 바뀐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오늘은 비를 참고 있는 새벽하늘을 보며, 유난을 떨며 화장을 하고 노트북과 책 한 권을 들고 뷰가 괜찮은 카페에 왔습니다. 운이 좋게도 창가 쪽 자리가 비어 냉큼 앉았습니다.
평소 아메리카노를 애정하는데 오늘은 사치를 부려 휘핑을 잔뜩 올린 까페모카를 주문합니다. 그리고 읽기 시작한 책에서 눈에 들어온 시의 한 구절이 나를 관통했습니다.
우두커니 인생을 만났고, 멍하니 견뎌내었으며 이제 물끄러미 미움과 연민을 바라봅니다.
그와 나의 사랑은 너무 추워서 서로에게 기억나지 않으려나요?
문득 우리가 살아왔던 12년의 나날 속 몇 장면이나 그도 기억하고 있을까 궁금하네요.
궁금하지만, 곧 궁금증은 사라집니다.
대답을 들을 수가 없는 질문이니까요.
괜찮습니다.
내 인생이 와락 끝나버려 그때 혹시 우리가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때도 궁금하다면 물어보면 되니까요.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가 찰나로 끝나는 그 순간에도 홀로 남아 있는 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렇게 읽고 쓰며 달래는 일입니다.
가슴이 깨질 듯 금이 가는 날에도
벅찬 가슴이 흥에 넘치는 날에도
문득문득 궁금한 그가 생각나는 날에도
제2의 인생을 꿈꾸며 설레는 날에도
새끼들의 언행에 생채기가 나는 날에도,
하염없이 이렇게 엉성하지만 솔직하게 읽고 쓰며 기록하겠습니다.
그를 용서해서도 아니고
그가 그리워서도 아닙니다.
남아있는 새끼들 때문도 아닙니다.
온전히 내가 나를 사랑하고
내가 나를 응원하기 위한 가장 안전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며칠 전 읽은 김혜자 선생님의 "생에 감사해"라는 글에 문구가 기억납니다.
"살아, 네 힘으로 살아. 죽지 말고 살아."
그들이 떠났어도 우리는 살아야 합니다.
잘 살아내다가도 툭툭 올라오는 분노와 연민 앞에서 내가 나를 지켜내야 합니다.
너무 버거운 날에는 그냥 숨만 쉬어도 됩니다. 그것만으로도 괜찮습니다.
"사세요.
삽시다.
당신의 힘으로,
우리의 힘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