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엄마는 '원더우먼'이지.

너와 나의 비밀

by 세렌디퍼

둘째 아이에게 귓속말로 비밀을 꺼내듯 이야기한다.

"있잖아, 엄마가 비밀이 있어."

"비밀이요?"

"웅, 엄마는 사실, 원더우먼이야. 마블영화에 나오는 히어로! 히어로는 절대 죽지 않아!"


세상 물정 다 알법한 4학년 딸아이는, 눈을 휘둥그레하며 믿어준다. 아니 믿고 싶었을게다.




나처럼 잘 견디고 버틸 줄 알았던 아이들.

하기사 아무렇지 않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일게다.

'갑작스러운 아빠의 사고사.'

그 사실만으로도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이라 아이들을 온전히 이해한다고 엄마인 나조차 장담할 수 없는 노릇이다.



불행 중 다행이었을까.

코로나 19로 인해 2020년 새 학기에 등교를 거의 하지 않고 온라인 학습으로 이루어졌다. 예정대로 학교에 등교했더라면 매년 신학기에 이루어지는 나에 대한 소개, 그리고 공식처럼 그 뒤를 따라다니는 가족 소개.. 그 고비를 자연스럽게 넘겼다는 사실만으로 안도했다.

아이들이 저마다 각자의 모양으로 조용히 고장 나고 있는 줄 몰랐던 나는 참 이기적인 엄마였다.


둘째 아이의 마음과 머릿속에 가득한 한 줄.


엄마도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질지 몰라.


마치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내 뒤를 졸졸 쫓아다니며,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기 시작했다. 나의 말 한마디, 말투, 몸짓 하나하나는 아이에게 전부였고 세상이다.


나도 때론 숨이 막혀왔다. 인근 정신건강센터와 심리상담센터를 찾아 몇 회기의 개인상담을 받았다. 그렇게 우리 모녀는 세상에 용기를 내고, 우리 안에서 더 이상의 상처가 존재하지 않도록 애썼다.


과연, 갑자기 아이들이 평안해졌을까?

내가 화장실에서 혼자 울고 있을 때, 아이들도 내색하지 않았지만 마음으로 울고 있었으며 아무리 눈물을 닦고 괜찮은 척해도 , '척'하는 엄마를 더 걱정하던 아이들이었다.


혼자 술을 마시며, 자기 연민에 빠져 있을 때도 아이들은 나를 주시하고 있었고 세상에 손가락질하며 욕지거리를 해댈 때도 내 옆엔 늘 아이들이 있었다. 당연히 불안과 두려움을 가시지 않았다.


그래서 시작한 히어로, 원더우먼 이야기.

언제부터인가 아이는 웃음을 참으며 수시로 나에게 물었다.

"엄마, 아직도 원더우먼이에요?!"

그럴 때마다 우린 누가 들을세라 목소리를 낮춰 속삭이듯 웃어버렸다.


이렇게 재미있는 비밀놀이로 둔갑시킨 것은, 심리상담도, 여행도, 알코올도, 쇼핑도, 아무것도 아니었다.


열쇠는 바로 '독서'였다.

하루 10분 독서로 시작하여 새벽기상으로까지 이어진 '미라클모닝' 루틴이 지금의 우리 가족을 만들었다. 나의 건강한 루틴이 정신을 지배하기 시작했으며 점차 우리 모녀에게 '안정감'과 '평온함'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잠시 허우적거리던 엄마의 모습에 , 아이들은 열두 살의 나처럼 너무 빨리 어른인 되어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엄마의 혹한기 훈련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관찰한 아이들은 급작스레 닥친 인생의 작고 큰 문제들을 결국은 해결해 나가고야 마는 삶의 태도를 목격했으리라. 그걸로 되었지 않았나.


둘째 아이가 말했다.

엄마는 참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이유를 물었더니,

아버님께 힘주어 '아이들 잘 키워낼 테니 당분간 연락하지 말아 주세요.' 했던 나를 꺼내 놓았다. 그래서 엄마는 정말 대단하고, 용기 있고 그래서 '존경'한다고 나를 띄워준다.


여느 막장 드라마의 대사처럼 '엄마처럼 살기 싫어.'를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을 뿐, 강박처럼 되뇌었다. 그런데 내 딸이 나를 존경한다니, 난 연말시상식에서 대상을 딴 것처럼 황홀하다.


돌고 돌아왔지만, 크고 작은 실패와 시행착오 끝에 마지막으로 썩은 동아줄이라도 잡듯 매달렸던 '독서'. 그리고 그 독서가 우리 모녀를 살리고 있는 생명줄이라는 사실을 매일 각성한다.


그리고 오늘도 그 생명줄에 나를 태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