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아이들 개학과 동시에 나의 휴가가 시작된다. 짧았던 무더운 여름방학을 마치고, 달려온 나에게 주어진 귀한 시간. 내일은 친정엄마와 아이들과 일정이 있어서 오롯이 나만의 휴가를 즐기기 위해 아침부터 소란을 떨고 시동을 걸었다.
그저 안 가본 곳을 가고 싶어 떠나 도착한 곳은 전라북도 부안의 내소사. 혼자 물놀이를 할 것도 아니기에 간단히 산책을 하고 근처 맛집에서 산채정식 정도 든든히 먹을 계획이었다.
대웅전으로 올라가는 길에 기와를 보았다. 나름대로의 소원을 빼곡하게 적어놓은 누군가들의 꿈, 소원, 목표..
기와불사라고 하던가? 사찰에서 소정의 금액을 받고 기와를 제공하는 것.
멈칫, 한동안 그 주위를 나도 모르게 서성거렸다. 사실, 그의 납골당이 시댁 근처라서, 아이들과 그를 찾는 일이 쉽지 않았고 솔까 그러할 마음도 들지 않았다. 물론 아이들에게도 충분히 설명하고 기일이나 생일에는 우리끼리 추모하고 생각하며 보냈다.
그런데, 용기가 생겼다.
그를 위해 기도하고, 그도 우리를 지켜주었으면 하는 욕심까지도.
손내밀어본다.1만 원을 공양하고, 누가 볼세라 급히 써 내려간 어설프고 어색한 손내밈.. 정말 그를 완벽 이해 할 순 없지만, 그 간의 세월 동안 나 또한 그 사람에게 완벽한 아내는 아니었을 테니, 화해하자 했다.
동갑내기라 가능한 제안?이었을지 모르지만, 오늘 나는 5년 전 그의 장례식장에 들어설 때만큼의 용기가 필요한 순간이었지만 온전히 나의 의지로 하고 싶었고 해야만 할 것 같았다. 그가 보고 있었을까? 들을 수 있을까?
어쩌면 나는 내 마음 편하자고 한 짓이었는지도 모른다.
나 좋자고 내민 손을 그가 잡았을지는 모를 일이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비로소 내가, 혼자 미소 지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 인연이 이리 꼬이고 얽혀 끊어내야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오롯이 남편과 내 잘못이 아니라, 정리하고 싶다. 우리도 그네들의 아들, 딸이었고 바른 사랑과 존중을 받으며 자라날 권리 따위도 있었지만 결국 쌍방이다.
그러니 그만 남편을 조금만 원망하고, 그만 나를 놓아주고 싶다. 그의 죽음에 대한 먼지만 한 죄책감도 훌훌 털어버리고, 친부가 내게 주었던 "재수 없는 년"의 주홍글씨도 이젠 다른 색으로 덧칠하고 싶다.
가슴 한켠, 남아있는 숙제를 오늘 과감하게 해 버렸다.
5년이나 걸렸지만, 5년 만에라도 내민 나의 손을 잡아줬을 거라 생각해 본다.
그래도 그래도 우린 부부....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