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년 아들과 딸, 이후 20년이 지나도.

깨져버린 강화유리.

by 세렌디퍼

그래서 나와 내 남동생은 2023년을 살고 있는 지금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서로 상이하다.


그저 남동생에게는 괴팍하고, 폭력적인 그냥 보통의 나쁜 아버지 정도였을까?

내 인생의 전반전을 위해 사랑받고, 존귀한 존재로 인정받아야 할 마땅한 시간에 마음의 칼부림으로 온통 난장판을 만든 그가, 내 동생에겐 다르게 기억되는 건 당연지사일 테다.


젊었을 때는 그 사람을 아직 '아버지'라 부르며 종종 소통을 하는 동생이 이해불가였고 아니, 더 밉기도 했다.

그래서 결혼 후, 한동안 명절에 어색한 소주 한잔을 하다 서로의 뒤엉킨 상처로 인해 연락을 끊고 지낸 시절도 있었다.


(뜨거웠던 연인들이 서로 다른 추억을 안고 살아가는 것도 인간의 치명적인 기억 오류 아닐까?)


그렇게 우리 남매는 서로의 잘못이 아닌 제삼자로 인해, 가까워질 수 없는 평행선 같은 존재로 지금도 살아간다. 아니 어쩌면 평행선을 긋고 있는 '나'에게 마음의 상처를 받았을지 모를 일이다.


이렇듯 나에게 가족구성원이란 '깨져버린 강화유리' 같다고 할까?

크고 작은 외부의 힘으로 수십 년 도끼질을 당해도
억척스럽게 뒤엉켜 도통 분리되지 않고 위협스럽게 남아있는 폐기물.


이제는 그 폐기물 덩어리에서 나를 천천히 떼어내고 있는 중이다.

손가락 하나 베이지 않고, 안전하게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내가 '글쓰기'라는 방법을 선택한 이유는 더 이상 나 자신을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아서이다.


사실 혹자들은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

잊고 살아도 모자란 시간들을 끄집어내어 소환하는 그 이유를 궁상이라 여기기도 한다.

하지만 나에겐 그들을 설득할 당위성과 필요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 자판을 두드리는 이 순간들이 나에겐 '소독약'을 바르고, '밴드'를 붙이는 시간이다.


이보다 더욱 효과적인 자가치유 방법을 찾기 전엔

나는 추후에도

무겁고, 다크한 나의 이야기들을

가볍고, 맑게 정화시키는 이 '행위'를 지속할 예정이다.


결국, 어차피, 해피 엔딩일 내 후반전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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