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범인.

더 깊은 곳 판도라 상자

by 세렌디퍼

얼마전 우연히 유명 연예인의 타국에서 갑작스러운 죽음이 뉴스에 보도되었다. 우리 나이 또래라면 누구나 알 듯한 개그맨 "서모 씨의 쇼크사." 대충 이름만 들어도 아는 그의 죽음에 나는 사실 예전부터 나의 아버지를 오버랩 했었다.


대중매체를 통해 알려진 것만으로도 가늠할 수 없는 그의 만행. 그리고 그 뉴스는 나를 40년 전으로 유턴하게 하였다.

© buxnor, 출처 Unsplash


우리 어머니와 가족에 대한 무차별적 학대, 그리고 내가 유일하게 따뜻함을 느꼈던 새어머니의 의문사, 직 후 젊은 중국 여자와 또 재혼.. 그리고 그 사이에 태어난 딸.. 나에게 여동생이 생겼다고 전하라 했던 , 나의 아버지와 서모 씨는 유사점이 많다.


뉴스 기사에 댓글을 단 사람들의 반응은 흥미롭다. 대부분 인과응보라며 당연한 요절을 이야기했다. 소수는 그래도 사람인데 인간의 존엄성을 운운하며 명복을 빈다고 한다. 나는 당연히 전자의 마음인 것 같다. 그래야 세상이 공평한 것 같다. 댓글 중, 그의 유명한 변호사 딸에게 그래도 아버지 빈소를 찾아 자식의 도리는 해야 한다는 댓글도 눈에 띄었다.

꼭 그래야만 하는가?
나는 그럴 수 있을까?

우리나라 전래동화의 핵심 교훈은 "착하게 살아야 하고, 나쁜 짓을 하면 벌을 받는다"이다.

그랬으면 좋겠다. 옳은 사고와 가치와 철학을 가진 사람들이 결국 승리하고 행복하게 사는 세상이 되기를 소망한다. 뉴스에 나온 서모씨의 영정 사진이 세상 초라하게 느껴지는 건 비단 나뿐일까. 쓸데없는 뉴스에 또 엉망진창인 내 생각을 기록해 본다.



그래서 오늘은 나의 아버지.

사실 가장 입 밖으로 꺼내기도 힘든 사람이다. 나의 진짜 치유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저 사람부터 직면하고 해결해야 하는 숙제임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는지 모른다.


지금이야 쓰나미가 휩쓸고 간 자리를 수습하고 되돌아보며 정리하는 중이니 대충 행복하고 감사한 삶이라고 에둘러댈 수도 있다. 지난 40년 동안엔 더 깊고 깊은 바닷속 판도라의 상자의 유무를 알고 있으나 열어볼 용기가 선뜻 생기지 않았다. 그리고 어쩌면 여전히 나는 차라리, 그의 죽음으로 문제가 해결되기 바라는 겁쟁이일지도 모른다. 아니 겁쟁이다.

'그가 죽는다면 어쩔 수 없이 그를 용서하게 될지도 몰라.'




그는 소위 나랏일을 하면서 위급한 상황의 시민들을 위해 몸을 사리지 않아야 하는 밥벌이를 할 수 있는 공무원이었다. 항상 어깨 위의 반짝거리는 무궁화 개수가 그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였다. 사회와 외부에서는 촉망받으며 지금 생각해 보면 나이에 비해 빠른 승진 가도를 달리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누구나 완벽할 수 없듯, 그에겐 치명적인 정신적 문제가 있었다.


외부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그 사람은 잔인한 가정폭력의 선두주자였다. 그 수법이 잔인하고 다양했고, 나와 남동생을 일부터 현장에 불러 앉아놓고 보란 듯이 폭행을 일삼았다. 그리고 급기야 우리에게까지 함께 폭력을 요구하기도 하였다. 엄마를 향해 집기를 던지는 일 등등. 그리곤 늘 말했다.

"너네 엄마가 맞을 짓을 해서 맞는 거라고."


어느 날은 도끼를 들고 엄마를 찾아다니자 통돌이 세탁기 안에 엄마를 숨겼다. 이미 엄마는 날아오는 접시를 피하지 못한 채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안면이 피범벅이 된 채 숨을 곳을 찾으러 다니는 중이었다. 살기 위한 쥐구멍을 나와 엄마는 옆집 세탁기에서 찾았다. 도끼를 들고 분노에 가득 차 옆집 세탁실까지 뒤지던 그 순간, 나는 숨이 멈춰버릴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다행히 세탁기의 뚜껑까지 열어보진 않았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그 사람은 본인의 차에 도끼질을 하기 시작했다. 백미러가 떨어지고, 강화유리가 금이 가기 시작하며 동네 사람들도 도망간다. (이 밖의 여러 가지 이유로 내가 기억하는 우리 집 차는 10대 정도 바뀌었던 것 같다. 수시로 차를 바꿀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 시절 어린 나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심증만으로 이제는 대략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다음 날 아무런 일이 없었다는 듯, 무궁화를 달고 출근을 한다. 먼지라도 묻지 않았나, 어깨를 연신 확인하면서.




이러한 12년의 결혼생활을 종료하고 차라리 이혼해 달라는 '나의 편지 한 통'에 엄마는 이혼을 결심하고 두세 차례 재결합을 반복하면서 결국은 이혼에 성공하게 되었다. 이제 보니 나의 어머니인 그녀는 그래도 이혼에 성공하였으니 나보다 재수 좋은 여자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이혼이 어리석게도 '해방의 날'이 될 거라는 착각을 하였다. 이후에 벌어질 사태, 어머니에 대한 모든 화살이 나에게 돌아올 것이라 생각하기엔 12살의 나는 너무나도 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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