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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해력을 논하기 전에.

까르페디엠

by 세렌디퍼

아이들 교육 관련 일을 하다 보니,

문해력에 관한 이슈가 자꾸 반복되는 것을 봅니다.


글을 읽고 이해하여 적용할 줄 아는 능력이라고 쉽게 이야기해볼까요?


그런데 마흔다섯의 나를 돌아보니

'내가 나를 얼마나 읽어주고 이해하고 있는가?'


그런 질문이 생기더라고요.


타인의 글은 그렇게 이해하려고 애쓰는데

나의 글은 써보려고 한 적 있는가?

나를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는가?


디지털문해력이란 신조어도 생기고,

요즘 대치 키즈아이들에 대한 뉴스가 연일 보도 되고 있는데요.

'7세 고시'에 이어 '4세 고시'까지 _


눈이 펄펄 내리는 3월 중순.

커피 한잔으로 눈 내리는 모습을 보며

끄적거려 봅니다.


나의 글을, 나의 오늘을, 나의 삶을 알아보고 이해하려는 역량.


그것을 무엇이라 일컬으면 걸맞을까요?

딱히 창의적 작명이 어려우니

'나 알아차리기'라고 할까요?


누구나 다 나의 삶을 기록하고 정리해 보면 좋겠어요.

위인전에 나올법한 훌륭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삶을 기록하고 정리하다 보면

내 인생에 대한 이해력이 생길지도 모르잖아요.



지난 주말엔 중고등학생이 된 아이들과 영화를 봤는데요.


죽은 시인의 사회_


저도 중학교 때 본 영화였는데 지금 다시 보니

어느 장면 하나 명대사가 아닌 게 없더라고요.



우리 개개인의 삶 자체가 작품이고 시가 되어간다는 것.


잊지 않기로 해요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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