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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아직 한창 사랑받아야 한다.

by 세렌디퍼

이제 여섯 살이 된 우리 집 강아지에게 눈 맞추며 까끌한 털을 고르며 속삭인다.

"스무 살까지 살아야 해. 꼭"

내 말에 강아지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귀를 긁곤 한다.


존재만으로 '사랑'이고,

남편이 떠난 그 자리를 '위로'라는 이름으로 조금씩 메워주기 시작해 준 보리(반려견이름이다.)를 보면서

너는 네가 이렇게 귀한 존재라는 것을 알까 싶어

알려주고 싶어 답답할 때가 있다.


동시에 마음 한편에서 나의 여섯 살에도 등을 긁어주며 그리 속삭여 주는 이가 있었을까, 부질없는 허기짐을 꿀꺽 삼켜본다.


그래,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나야 어찌 되었든,

지금 마흔다섯의 나에게라도 말한다.


"네가 다 기억해 내지 못하는 '사랑'이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네 기억이 눈물콧물과 뒤섞여 그게 콧물인지, 눈물인지 분간할 수 없어 왜곡된 사건이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평생 피해자에 가까운 삶을 살았다, 여겼지만

알고 보니 나도 누군가에게 지워지지 않을 상흔을 준 가해자였을지도 모르는 반전스토리가 있을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써본다.

실수를 자각하기 위해 쓴다.

공식을 까먹지 않기 위해 깜지를 쓰듯,

재차 답을 맞혀본다.


이리도 부단히 정도를 걷기 위해 몸부림치는 나를

내가 사랑하는 수밖에.


찌그러진 냄비를 편다고 새것으로 돌아갈 순 없지만, 찌그러져있던 만큼 더 단단한 내가 되어 팔팔 끓어보리라.


하지만 이제는 안다.

팔팔 끓어오르지 않아도

우린 한창 사랑받아야 할 때라는 것.


행위와 성취에 따라서 결정되는 인정을 사랑이라,

착각하지 말아야지.

우린 이제 그 정도 진실은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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