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스스로에게 사과해야 했다
몸을 무리하게 밀어붙이다가 다리에 통증을 느낀 지 거의 1년 정도가 되어가자 피로감이 많이 들었다. 그나마 효과가 있었던 건 충격파 치료였는데 그마저도 통증을 완벽하게 해결해 주지는 못했기 때문에, 운동은 꿈도 꾸지 못했다. 가끔은 오래 걷거나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다리가 묵직하게 저려오곤 했다.
그 동안 스스로 내 몸을 원망했다. 왜 이 정도로 공을 들이는데 낫질 않아? 진짜 약하고 비효율적이야.
몸이 아프니 마음도 딱히 건강할 리가 없었다. 당시의 진로 및 커리어 고민까지 겹쳐서 머릿속이 지독하기 복잡했다. 그 즈음 답답한 머릿속과 무거운 다리를 조금이라도 가볍게 하고 싶어서 퇴근길에 가끔 불교 유튜브를 들으며 집으로 오곤 했다.
어느 피곤한 하루, 초가을 저녁. 무더위가 가신 날씨는 적당하게 상쾌했고, 집으로 걸어가는 길은 항상 같은데도 그 날은 그냥 왠지 조금 더 걸음이 가벼웠던 것 같다.
-내 몸이든 재물이든 사람이든, 내가 누리는 걸 뭐든 당연한 내 거라고 생각하면 안 돼요.
-다 내 선택에 따른 겁니다, 고통도 즐거움도.
이어폰을 통해 무심결에 그 말을 듣는 순간 어떤 생각이 들었다. 아주 당연하고 당연해서 여느 자기계발 책에서나 볼 수 있는 말들인데도. 그 순간은 그 단어들의 뒤에 숨어 있던 색깔들이 진짜 눈 앞에 읽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 몸은 내가 마음대로 소유하고 평가하고 다루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
멋대로 기준을 잡고, 무리를 하다가 다쳤으니 내 선택 때문에 몸이 아픈 건데, 난 빨리 낫지 않는다고 스스로를 다그치고 원망했다는 것.
내 몸에게 내가 먼저 사과해야 된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진심으로, 가슴 깊은 곳에서.
몸은 내가 수치적으로 평가하고 비난할 대상도 아니고, 오히려 나의 무리한 요구(밤샘 작업, 균형잡히지 않은 식단)등을 나를 위해 묵묵히 견뎌주고 있다는 걸.
몸을 ‘나와 함께하는 상대방’으로 인식하니 신기하게도 원망과 짜증이 사라지고 애틋함과 고마움이 남았다. 마음이 아주 편했다. 내가 괴로운 것도 내가 부른 일이었고 그에 대해 스스로에게 사과하는 것도 내가 할 일이었다. 나에게 주체성이 있고 자신과 사랑하고 화해할 능력이 있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나를 둘러싼 프레임 하나가 그렇게도 가볍게 벗겨지고 바뀌는 순간을 잊을 수 없다.
침대에 앉아서 내 다리에게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속으로 얘기하면서 손으로 오래오래 정성껏 마사지를 했다.
그 날 이후로 거짓말처럼 신기하게도 몸이 회복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