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닝페이지를 쓰며 발견한 것
모닝페이지를 쓴 4일째 아침
모닝페이지는 아티스트웨이라는 책에서 나온 방법이다. 나는 책을 읽은 것은 아니고 유튜브에서 어떤 작가님이 매일 아침마다 모닝페이지를 쓴다는 영상을 봤다. 그때는 아침마다 3장씩 일기를 어떻게 써?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요즘 아침에 독소를 배출해 내듯 온갖 부정적인 생각들에 휩싸여 눈을 뜨는데, 그 독소들을 어딘가 받아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원래 쓰던 일기장을 펼쳐서 모닝페이지를 쓰기 시작했다. 과연 이게 뭐 얼마나 도움이 될까 하는 맘으로 오늘까지 모닝페이지를 쓰고 있다.
첫째 날, 둘째 날은 억지로 글을 써 내려갔다. 다시 읽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악필로 휘갈겨 내려가며 ‘이게 맞아? 세장이나 쓸 수 있다고..?‘라고 생각했다. 뭐 언제까지 이렇게 쓸 수 있을까. 이틀만 써보자. 그런데 어제는 아침에 일기를 쓰는데 텅 빈 빈칸이 채워져 나가는 게 아쉽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상담을 받을 때, 시간이 다 되어가면 ‘아직 못한 얘기들이 많은데 벌써 1시간이 되어가네.’ 라며 아쉬운 맘이 들었던 것처럼. 세장의 빈 페이지가 채워져 가는 것이 나와의 대화 시간이 종료되어 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3장이 끝나기 전까지 내 안의 많은 얘기들을 다 털어놓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안의 거대한 석상을 발견하다
오늘도 아침에 모닝페이지를 썼다. 오늘은 할 말이 많아서 일기장에 기다렸다는 듯이 글자를 휘갈겨서 써 내려갔다. 어제 있었던 일, 오늘 아침에 들었던 생각들, 여전히 어떻게 살아갈지 모르겠는 마음들을 글자에 담아 써 내려갔다. 그러다가 도움에 대해 썼다. 난 늘 도움을 원하는 사람인 것 같다라고. 그 생각은 내가 나를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라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그건 늘 생각하는 부분이었다. 언제나 인식하고 있던 새로울 것이 없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글을 써 내려가다 내 안에 아주 거대하고 단단한 석상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불확신 하고 애초에 될 수 없는 사람이라고 믿는 아주 크고 거대하고 단단한 석상이었다.
우상처럼, 내 안에 아주 거대하게 자리 잡은 석상이었다. 글을 쓰는데 그 석상의 이미지가 또렷하게 그려졌다. 자리 잡은 지가 꽤 된 것처럼 이끼가 덮이고 왠지 다가가면 안 될 것 같은 오오라를 풍기며 자리 잡고 있는 석상이었다. 나에게 그 석상은 아주 거대하고 단단하게 느껴져서 나는 그 앞에서 아주 아주 작게 느껴졌다. 그리고 나는 그 석상 앞에서 눈치를 보고 있었다. 혹시 나를 맘에 안 들어하면 어떡하지? 내가 더 대단한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은데 그게 안되면 어떡하지?
나는 내가 타인의 눈치를 굉장히 많이 보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새로운 사실을 하나 알았다. 나는 그 누구보다 나 스스로의 눈치를 많이 보는 사람이었다. 나에게 인정받고 싶었고 나에게 잘 보이고 싶었구나..? 엉덩이가 불이 덴 망아지처럼 어쩔 줄 모르며 뛰어다니고 있었던 이유가 그 우상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였구나. 내가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아니라고 증명하고 싶었던 것도 내 안에 자리 잡은 그 우상에게 잘 보이고 싶었던 것이구나?
그 거대한 석상의 존재자체를 부정하고 싶었던 건지 모른다. 애초에 없앨 수 없다는 생각에서 모른 척하고 지나왔나 보다. 하지만 왠지 글로 그 형상을 묘사하고 내 안에 그 석상이 있음을 인정하는데 맘이 편안했다. 작은 숙제를 해결한 기분이었다. 그동안 내가 많이 외롭고 혼자 있다는 느낌이 들었던 건 내가 그 누구보다 엄격하게 나를 판단하고 믿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친구나 엄마나 연인들에게 검열당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누구보다 나를 외롭게 한건 나 자신이었다.
나와 친해지기
나에게 숙제가 하나 생겼다. 저 거대한 석상을 친근하게 만들기. 눈치 보는 대상이 아니라 늘 내 곁에 있는 대상으로, 힘들 때 힘든 얘기를 터놓고 얘기하는 친구가 될 수 있도록. 우상이 아니라 그냥 석상으로 인식하기.
모닝페이지를 꾸준히 써볼 예정이다. 어떤 변화가 있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내가 나를 새롭게 인식하는 확실한 방법인 것은 맞는 것 같다. 앞으로 또 새롭게 발견하는 것들이 있으면 브런치에 남겨보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