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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이블루 Feb 24. 2021

정사각형 세상

SNS 콘텐츠 디자이너

정사각형 세상

재작년 이직한 회사에서 SNS 광고디자인 업무를 맡게 되면서 나는 정사각형 세상에 살게 되었다. 그 전에는 포스터와 명함 사이즈에 맞춰 아트보드를 만들었는데, 이제 포토샵을 켜면 제일 먼저 1080x1080 정사각형 아트보드를 만들어 놓는 것이 일이 되었다.

늘 마주하는 Untitled-1. 정사각형 아트보드


SNS 광고디자인을 하기 전에는 아트보드 사이즈는 거의 직사각형이었다. 흔하게 접하는 웹사이트, 포스터, 명함은 다 직사각형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사각형으로 디자인 작업을 할 일이 없었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이 삶의 일부로 자리 잡으면서 정사각형 프레임은 어느새 너무 익숙해졌고 내 포토샵 아트보드 사이즈도 직사각형이 아닌 정사각형으로 변했다.


업무

하루 업무의 시작은 진회색의 익숙한 포토샵 화면을 모니터에 띄우는 것으로 시작한다. 포토샵이 실행되면 정사각형 아트보드를 만든다. 다른 모니터의 한쪽에는 마케터에게 전달받은 기획서를 띄어 놓는다. 익숙하게 기획서에 적힌 텍스트를 복사해서 생성된 아트보드에 붙여 넣고 구글 드라이브에서 사용될 소스들을 다운로드한다.


다운로드한 소스를 텍스트와 함께 아트보드에 대충 배치해 초안 작업을 해둔다. 곧 텍스트를 기획의 느낌에 어울리는 폰트로 변경하고 배경의 컬러, 사진 보정 등 후가공을 더해 완성도를 높이는 작업을 진행한다. 마무리 작업은 이미지 리사이징, 레이아웃 재배치 작업이다. 제작된 정사각형 소재를 바탕으로 여러 가지 사이즈로 재가공을 하여 추출하면 업무가 마무리된다.


소재 제작 일정은 거의 하루고, 하루에 이미지 2세트 정도를 제작하게 된다.(리사이징 된 3개~5개 이미지 = 1세트) 드라마의 쪽 대본처럼 당일에 기획서를 받아 당일에 소재를 전달한다. 제작 일정이 짧은 만큼 소재가 태워지는 기간도 짧다. 그래서 SNS 광고 소재 제작은 디테일과 섬세함보다는 속도와 표현력이 더 중요하다.


휘발되는 디자인

SNS 광고디자인은 피드백이 빠르다. 광고가 SNS에 태워지자마자 클릭률이나 전환율로 소비자들의 반응을 즉각적으로 알 수 있다. 조급한 성격이거나 빠른 피드백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장점이다. 나도 성격이 조급해서 눈에 바로바로 보이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에 SNS 광고의 이런 점이 초반엔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빠른 피드백은 단점이 되기도 한다. 피드백이 빠른만큼 소재의 교체도 자주 진행되기 때문이다. 소재를 일정기간 태웠음에도 반응이 없으면 그 소재는 경쟁에서 진 소재가 된다. 공들여 만든 디자인이라도 반응이 없으면 바로 새로운 소재로 교체된다. 그래서 어느 순간 소재를 공들여 제작할 필요가 있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입사 초기에 남자 화장품 브랜드 소재를 제작한 적이 있었다. 대학교 창업개발센터에서 작게 시작한 브랜드였는데 규모를 좀 키우길 원했던 것 같다. 홈페이지부터 제품 패키지까지 리브랜딩을 한 상태였다. 재촬영된 이미지는 다크 그린과 블랙 컬러를 주로 사용해서 고급스럽고 세련된 느낌이 들었다. 나는 리브랜딩 된 콘셉트에 맞춰 10초가량의 짧은 모션 영상을 제작했다. 리브랜딩 콘셉트와 어울리는 세련된 소재였다. 스스로에겐 꽤나 만족스러운 작업물이었다. 하지만 효율이 처참했다. 이전 소재와 비교했을 때 클릭률도 그렇고 전환율도 낮게 나온 것이다. 소재는 바로 갈아 끼워졌다.


SNS 소재를 제작하다 보면 이런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나 시간을 들여 만든 디자인이 얼마 못가 새로운 소재로 교체돼야 할 때는 ‘이제 그냥 빨리 만들어야겠다.’ 란 생각이 든다. 솔직히 이런 마음이 드는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때로는 내가 디자인을 하고 있는 건가?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내 디자인이 어디론가 휘발되어버린다는 느낌을 받는다.


글로 남겨보는 현재의 일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서 디자인으로 밥벌이를 하는 한 디자이너의 현실을 기록해두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가 하는 업무가 언젠가는 사라질 수도 있다. SNS가 언제까지 사람들의 삶 속에 자리 잡아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정사각형이 아닌 다른 프레임이 삶 속에 자리 잡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대의 경험, 이 세상 어떤 권력자도 빼앗지 못하리! -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


지금 적어두는 이 글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 대한민국 디자이너의 현실을 공감할 수 있는 글이 될 수도 있기에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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