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라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해서 잘 모르기 때문이다.’
러빙 빈센트를 보고 일기장에 적었던 글이다. 영화를 처음 보게 된 건 작년이었는데 ‘반 고흐, 영혼의 편지’라는 책을 읽고 문뜩 고흐와 관련된 영화가 보고 싶어 찾아보게 되었다. 고흐의 죽음을 밝혀내는 스토리로 내용이 탄탄하고 영상미가 너무 훌륭한 영화였다.
아름다운 영화였지만 보는 동안 마음이 편하진 않았다. 고흐의 해괴망측하고 충동적인 행동들에 나도 고흐를 멀찍이서 이상하게 바라보는 동네 사람이 되어있었다. 소외되고 외로웠던 고흐의 모습에 동정심이 들었지만 다가가고 싶은 마음은 느껴지지 않았다. 아마 영화를 보고 썼던 글은, 내가 과연 저 당시 동네 사람이었다면, 고흐의 사촌이었다면, 나는 그에게 다가갈 수 있었을까? 진짜 친구가 되어줄 수 있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인 것 같다.
반 고흐를 좋아한다는 것은 그를 잘 모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다. 그를 인간적으로 알았다면 좋아할 수 없었을 것이다.
화가, 연예인, 인플루언서 등등. 어떤 사람을 좋아한다는 감정은 참 쉽게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다. 그 사람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인간을 겪고 알아가는 과정에서도 좋아할 수 있다면, 누군가를 다 알면서도 좋아할 수 있다면 그건 사랑의 감정이다. 이해하기로 마음먹은 시점부터 사랑이 되는 것이라 느꼈다.
러빙 빈센트, 우리는 고흐를 잘 모르기 때문에 좋아한다. 그를 다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좋아한다. 어쩌면 사랑한다는 말이 너무 공허할지도 모른다. 인간 고흐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모두가 사랑할 수 있는 그림을 그려낸 고흐라는 화가에 대해서 감사함과 미안함을 깊게 느낀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