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11
집에서는 도통 글이 써지지 않는다.
슬로우모션을 쓰면서 지냈던 카페의 지정석 같던 자리에서도 이제는 더 이상 글이 써지지 않는다.
핑계 삼자면 아마도 각각의 글마다 어울리는 자리가 있는 모양이다.
노트북을 펴놓고 이곳저곳 옮겨 보아도 도통 세줄 이상 넘어가지가 않았다. 나름 폭풍 같았던 시기는 지나갔다 여겼는데 나도 모를 파도가 아직 남아있는 건지 머릿속의 생각들이 스치기만 할 뿐 자리잡지 못했다.
브런치에 들어와 다른 이들의 글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이다 때론 눈물짓다 결국 부러워졌다. 그들의 정돈된 생각의 글자들이.
나는 무어라고.. 뭐 그리 복잡하고 힘든 삶을 산다고 글 하나 쓰지 못하고 헤매고 있나.
어차피 완벽하지 못할 글인데 나는 왜 망설이고 있을까
코로나라는 말도 안 되는 시기를 버텼던 이유는 언젠간 끝나겠지 였다. 코로나만 끝나면 글쓰기 수업도 다시 다니고 그림도 배우고 싶었다.
세상 일 내 마음대로 안되는 거야 진즉 알고 있었음에도 난 뭘 기대했던 건지.
코로나 이 좌식이 이렇게까지 나를 농락할 줄이야 그 누가 알았겠는가. 끝날만 하면 또 시작되고 줄어들만하면 보란 듯이 더 창궐하는 전염병 앞에 나는 더 이상 핑계로 그 좌식을 댈 수 없었다.
모두들 나름의 방법으로 코로나 안에서 시작하고 마치며 살아가고 있었다.
나도 무엇이든 다시 시작해야 마칠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치지 않는 삶이란 더 이상 재미있지 않았다. 슬로우모션을 통해 얻었던 한 번의 마침. 그로 인한 삶의 성장에 대한 쾌감. 그걸 다시 느끼고 싶었다.
나는 다시 글을 써야만 했다. 조금씩 늘고 있는 건지 아니면 더 뒤처진 건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써야만 했다. 소설을 써볼까 다시 에세이를 쓸까 시를 쓸까 또 한동안 고민하다 집어치우기로 했다. 닥치는 대로 쓰자.
글을 쓰기 위해 아무거나 써보자.
유명한 소설가는 소설 집필기간에 새벽 3시부터 일어나 오감을 각성시킨 뒤 저녁까지 글을 쓰고 운동을 두 시간 한 뒤 맥주를 마시고 잠이 드는 일상으로 3년을 보낸다 했다. 그에 비해 나는 얼마나 자유로운가.
독자의 기대감을 부담감으로 어깨에 짊어지지도 않았고 돈을 받고 마감을 쳐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일단 아무거나 아무 때에 쓸 수 있는 자유를 맘껏 누려보기로.
조앤 롤링의 엘리펀트 하우스 같은 나만의 아지트도 찾았다. 지호의 등하교가 편하고 적당히 따뜻하며 오래 있어도 눈치 주지 않는다. 이곳에서 새롭게 글을 쓸 테다.
목표는 글쓰기.
글쓰기를 위한 글쓰기. 자유롭고 평화롭게 나만의 글이 살아나서 숨 쉬어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