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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우모션 Dec 28. 2021

혼자라서 외롭지 않다

잡담. 12

8시부터 여는 나의 새로운 아지트에서 오늘 다행히 제일 좋은 자리를 맡았다.

스페셜티만 파는 이곳에서 맛있는 커피 한잔과 머핀을 시키고 노트북을 열었다.

창이 크고 좌석 간 간격이 넓고 노트북 충전하는 곳도 많아 작업실로 삼기 더할 나위 없이 좋건만 역시나 아주 큰 단점이 있다.

아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것.

인사는 해야겠고 하다 보니 말이 길어지고 혼자 온 거 같으면 또 빈에 빈 말로 앉으라고 하여 계획에 없던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러다 보니 집중력이 끊기고 글은 산으로 간다.

자유롭게 쓰는 글이면서 작업실 운운하는 것이 우습기도 하지만 짧은 을 쓰더라고 집중해야 하는 시간과 공간과 커피가 필요하다. 여하튼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접근금지 팻말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 수밖에 없는데 그럴만한 콧대는 또 없다.


나는 혼자 있는 걸 좋아한다. 그렇다고 사람을 싫어하지 않는다. 그저 혼자 있는 시간이 스스로에게 더 풍요롭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이 말을 혼란스러워하지만 더 이상 설명할 수 없이 그대로다.

언제부터 이렇게 혼자 있는 걸 좋아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다만 사람들에게 의지하지 않는 법을 배운건 언제부터였는지 짐작이 간다.

지호가 나오자마자 입원을 한 관계로 초보 엄마들의 인맥형성의 중심인 조리원에 입소하지 못했다. 그 이후 문화센터에 가도 적응을 못하는 바람에 치료실만 전전하다 남편의 이직으로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으로 이사를 했다.

초중고 시절을 보낸 곳을 떠나니 친구도 없었고 지호를 통해 맺을만한 커뮤니티도 없던 시절. 나는 그때 제일 힘들었다. 점점 더 지호에게 장애의 색은 짙어졌고 다니던 기관에서 쫓겨나기도 했으며 유전자 질환이 의심되고 있었다. 어느 날 검은 머리가 하얗게 세기 시작했다. 나름 잘 버티고 있다 생각했지만 감당 못 할 어려움은 아무리 숨겨도 어떻게든 정체를 드러내는 모양이었다.


그때 나는 혼자였다. 물론 남편이 있었지만 그는 같은 상황에 있는 동지니까.. 동지 말고 벗은 없었다.

누구 탓을 하는 건 아니다. 힘들다고 손 내밀지 않았으니까 잡아주는 사람도 없었겠지. 그저 어쩔 줄 몰라하는 나에게 먼저 손 내미는 이가 없음을 깨달았을 뿐이었다. 뭐라 도움을 청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그때 너무 답답할 때면 어쩌다 만난 사람에게 내 얘기를 마구 쏟아냈다. 한참을 쏟아낸 뒤 본 상대의 표정은 `나한테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지 '였다. 아차 싶었지만 늦었고 우습게도 그런 일은 몇 번을 반복하고 서야 나는 이건 나의.. 나만의.. 우리만의 문제다 라는 것을 깊이 깨달았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혼자 있는 시간에 재미를 들인 것이.

스타벅스에 앉아 홀로 커피를 마시며 책을 보는 시간이 사랑스러웠다. 아직은 글을 쓰지 않던 시절. 다이어리를 정리하고 일기를 썼다. 오늘의 일과 내일의 일을 나누며 머릿속의 복잡한 것들을 숨 쉴 수 있게 해 줬다. 그렇게 잠잠히 시간을 보내고 나면 지호에 대한.. 해결할 수 없는.. 생각만 해도 숨이 막히는.. 그 모든 것들이 그저 그런 일로 지나갔다. 그래.. 어쩔 수 없는 거지. 이렇게 크고 작지 않게 시간을 보내듯 흘러가겠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정말로 그렇게 지냈다. 살면서 살아짐으로..


이 단특한 생활의 단점은 감정의 기복이 크지 않게 된다는 거다. 크게 슬프지도 크게 즐겁지도 않은 평행의 감정선. 그 밋밋한 감정선으로 인해 나는 남을 상처주게 되었다. 친한 이들의 아픔과 즐거움에 크게 공감하지 못하는 것이다. 대부분은 뭘 그런 거 가지고 그렇게 슬퍼, 그렇게 좋아.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시간 지나면 좋은 일도 나쁜 일도 다 그냥 그런 일이되. 이런 재수 없는 소리로 되받아대니 다들 점점 말수가 적어진다. 나도 내가 왜 이리 무던하다 못해 냉정한 인간이 되었는가 고민하지만 어쩌면 이것이 나의 생존본능이라 여겨진다.  내 고통에 익숙해져 담담해지는 것. 당장의 즐거움에 도취되어 가진 문제를 잊지 않도록 기쁨을 불리지 않는 것. 사람들과 어울리는 시간은 즐겁지만 그 시간에 너무 취해 홀로 이겨내야 할 아픔이 커지는 것이 두렵다. 어차피 혼자 가야 할 길이라면 적당히 나를 숨기고 싶다.


나이가 한 살씩 더하니 홀로 있는 시간을 잘 보내는 내가 더 좋아진다. 커피에 책과 이제는 글쓰기까지 더한 이 시간이 정말로 외롭지 않다. 그 어떤 시간보다 나를 나답게 만드는 시간.

결국 외로움이라는 건 누구와 함께 있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저 시간을 스스로 채우지 못한 것일 뿐이다. 당신은 지금 외로운가? 시간을 채우라. 나로 가득하게.. 그렇게 채우다 보면 외롭지 않은 내가 사랑스러워질 날이 올 것이다. 진정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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