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13
내일이면 2021년이 끝난다. 휴~
절로 길고 긴 한숨이 흘러나온다. 2020년에도 분명히 이렇게 인사하고 내년엔 나아지자 했던 것 같은데 도통 뭐가 나아진 건지 모르겠다. 그저 말도 안 되는 일들에 익숙해진 것 말고는.
마스크를 쓰고는 침을 너무 흘려서 턱이 다 뒤집어지던 지호는 이제 마스크를 알아서 코 끝으로 올리게 되었고 안 맞겠다 버티던 백신도 우리 부부는 누구보다 빨리 3차를 접종했다. 지호네 학교도 온라인 수업과 정해진 일정들을 어떻게든 소화를 해냈고 덕분에 나는 다시 브런치에 글을 쓸 수 있었다. 남편 동기들의 감봉 소식에 바짝 긴장했거만 다행히 남편의 일터는 코로나 시기에도 더 높은 실적을 올려서 살아남았다.
사춘기가 시작된 지호는 나를 뛰어넘으려 매우 강력한 몇 방을 날렸지만 나는 이를 악물고 버텨냈다. 그 과정에서 속이 찢기기도 했으나 굉장히 선방했다고 생각한다. 남편과 지호의 훈육 문제로 또 집터 문제로 크고 작은 다툼을 했지만 늘 그랬듯이 우리는 대화했다.
지호의 사시수술을 앞두고 트라우마가 짙어질까 열 달을 애를 태웠으나 우리 모르게 또 마음이 자란 지호는 씩씩하게 잘 해냈다. 남편의 두드러기가 심해져 입술까지 붓고 위험했지만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의사를 만나 적절한 진료로 적절히 진정되는 중이다. 친정아부지의 건강은 더 안 좋아져 엄마가 같이 흔들렸지만 코로나로 중단되었던 엄마의 일이 다시 시작되자 주저앉지 않고 다리에 힘을 주셨다.
이렇게 우리 가족은 웃을 일과 울을 일이 뒤섞여 한 해를 또 살아냈다. 뭐 남들과 비슷할.. 누군가에게는 평안했을.. 누군가에겐 안쓰러웠을 날들이 어찌어찌 흘러갔다. 구름이 하늘에서 미끄러지듯이 달빛이 밤하늘에 잠잠히 퍼지듯이 시간이 흘러갔다. 흘러가는 것들은 기민하게 째려보고 있지 않으면 금세 없어져버렸다. 매일을 열심히 살았던 것 같은데 대부분의 날들은 조금은 억울하게도 벌써 기억이 나질 않는다. 이래도 모든 날을 죽을힘을 다해 살아야 하는가? 하는 객기스럽고 쓸모없는 생각.
내년을 어찌 살겠다는 목표도 없고 다짐도 없다. 그저 올 해처럼 어떤 말도 안 되는 상황에도 잘 버텨주기를. 생존본능과 듁일놈의 생활력으로 이겨내기를. 세상이 끝날 것 같은 일들이 벌어져도 진짜 세상은 끝나지 않고 그저 나만 좀 욕이 나오는 고된 삶일 뿐이니, 욕이라도 간지 나게 하게끔 입도 잘 풀어놓고 고된 일들을 이길 때 먹어야 하는 브라우니를 먹을 수 있게 돈은 좀 벌리길. 흘러야 할 것들이 고여 썩혀지지 않도록 이내 잊히더라도 각자의 처지에서 굽이굽이 흘러 하나로 만나 푸르게 섞여 펼쳐지기를 바라는 마음. 그저 그뿐.
잘 가라 2021년. 빠이 짜이찌엔 사요나라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