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 47일째라는 오늘
잘 버티던 우리 동네도 조금씩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어느 집은 물이 새고, 나가는 길목에 흙들이 조금씩 무너지고, 텃밭의 농작물이 썩어간다.
고마운 사람들의 걱정 어린 연락이 이어진다.
다행히 잘 지내고 있다고 대답할 수 있어서 감사한 날들이다.
이사 온 5월은 해 질 녘 마당에 나가면 아카시아 나무 향기가 아줌마 마음을 설레게 만들었고 살랑 부는 바람에 흩날리는 나무들이 감수성이 폭발시켰으며 이른 새벽 공기는 산소가 가득 차 거짓말 조금 보태 폐가 놀랄 정도였다.
그렇게 감상에 젖은 날이 채 얼마 지나지 않을 무렵 콩깍지가 조금씩 벗겨지기 시작했다.
초여름의 공기가 좋아 문을 열고 자기 시작하니 밤이면 선선한 숲의 바람이 들어와 코가 간질였다. 그 바람에 단잠에 빠질 무렵 동네 개들이 짖기 시작한다.
이 동네의 개들은 진정한 개들이라 짖는 소리가 아주 개소리다.
이 쪽 집 개가 짖으면 저 쪽 집 개가 짖고 스타벅스에 모인 아줌마 부대처럼 주변 공기나 불빛과 상관없이 떠들어댄다. 거기에 보태 동네에 우아하게 다니던 고라니 하나가 어느 집 울타리에라도 걸리는 날이면 동네 전체가 동물원이 된다.
서예지가 정확히 흉내낸 고라니의 울음은 정말 밤에 듣기에는 괴롭고 큰소리다. 기차 화통을 삶아 먹은 건지 동네가 쩌렁쩌렁 울린다.
처음엔 누구 집에서 아동학대하는 줄 알고 남편을 깨웠다가 고라니 소린 걸 알았다.
매미나 풀벌레 소리는 이미 개소리와 가끔 들리는 고라니 소리로 묻혀버렸고 우린 창문을 닫고 에어컨을 켰다.
날이 조금씩 더워지기 시작하니 비도 잦아졌다.
타들어가던 앞마당이 젖어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결국 집 안에 작은 다리가 많으신 손님들이 여럿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바이킹과 후룸라이드는 무서워해도 벌레는 별로 무서워하지 않는 나지만 갑자기 방바닥에서 솟아난 듯이 나타나는 다리가 매우 많은 벌레들을 잡는 일은 사람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며칠을 잡아대다 결국 농약 방에 가서 전용 약을 사고 집 주위에 뿌리고 나니 좀 잦아들었지만 지난 겨우내 너무 따뜻해서 까놓은 알들이 죄다 부화한 고놈들의 생명력은 온 동네를 들썩이게 했다.
각자 집 주변은 처리해도 동네가 다 그런 것 같아 보건소에 전화하니 그 아이들은 해충이 아니라고...
목구멍으로 올라오는 나쁜 말은 삼키며 무해한 벌레인 건 알겠으나 그래도 벌레는 벌레일 뿐이라고 상냥한 척 받아쳤다. 전화의 끝은 니들이 알아서 하란 소리.
제일 자주 오는 손님 성함이 그리마와 노래기다. 이 두 분 중 노래기라는 분이 골치가 아픈데 그 이유는 냄새다.
지가 마치 냄새 먹는 하마 인양 나무 냄새 풀냄새 바람 냄새를 다 빨아들이고 특유의 노린내만 뿜어댄다. 덕분에 비 온 다음날이면 동네에 노래기 냄새가 났다.
장마가 끝나고 땅이 바짝 마르면 괜찮다는데 장마가 이리 길어지니 땅이 쉽게 마르지 않을 것 같아 벌레 죽이는 약을 한 포대 더 사다 놨다.
이사 왔을 무렵 기운이 없어 팔뚝에 잘 앉지도 못하던 모기는 그동안 해병대라도 다녀온 건지 전투력이 급상승하여 병원에 안 가기로 유명한 친정오빠를 병원에 가게 만들었다. 마당 옆 텃밭 고랑을 매 주고 모기에 물린 오빠는 가을배추는 니들끼리 심으라며 등을 돌렸다.
비슷한 시기에 이사 온 이웃 어르신은 우릴 볼 때마다 투덜거리시는데 맞장구치면서도 사실 뒤돌아서 우리는 웃고 만다. 완벽하리라 기대하고 오지 않았지만 살아보니 흠이 더 많이 보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흠을 우리 힘으로 메꿔가는 삶의 재미가 있다. 모든 게 매끈하고 말랑말랑하지 않지만 불편함에 익숙해지며 그럼을 인정하고 뾰족하고 날카롭지만 않다면 딛고 지나가도 되겠다는 믿음이 생긴다.
비가 몇 날 며칠 온다고 나라가 망할 것 같다고 지구가 멸망한다고 말들 하지만 지난봄 그렇게 아름답던 날씨가 주어졌을 때 우리는 무슨 말을 했던가.
봄날에 아카시아 냄새를 맡았으니
텃밭에 맛있는 오이를 따서 김치도 해 먹었으니
마당에서 고기도 구워 먹고 줄넘기도 했으니
깜깜한 밤에 창문으로 뻐꾸기 소리를 들으며 달빛을 감상했으니
그 대가쯤이야 응당 치러주겠다.
여름이 지나면 또 달콤한 가을이 오겠지.
그러면서 살아내 본다.
도시 촌사람들의 첫 여름이 이렇게 지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