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질 것들에 대한 그리움

#4. 언제 이렇게 컸을까

by 폼폼

여느 집 주방이 그렇듯 우리 집 주방 역시 항상 맛있는 냄새로 가득했다. 매 끼니 때마다 나는 각기 다른 반찬 냄새나 갓 지은 밥 냄새는 기본이고, 방금 막 털어온 깨를 볶는 고소한 냄새나, 고구마나 옥수수를 찌는 냄새, 김장 철엔 고기 삶는 냄새, 마늘, 고춧가루 냄새까지. 냄새만 맡아도 살이 쪘다면 난 아마 굴러다니지 않았을까.


서툰 어른


우리 아빠는 6남매 중 둘째 무려 외아들이다. 덕분에 명절이면 전이며 잡채며 음식은 싸그리 우리 엄마의 몫이었다. 할머니가 살아 계실 땐 할머니와 엄마 둘이니까 그나마 사정이 좀 나았지만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는 정말 우리 엄마 혼자서 그 많은 음식을 다 하셔야 했다. 그래서 나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전 부치는 법을 배웠다. 두부부터 차례로 동태, 꼬지, 동그랑땡을 부쳐내는데, 초장부터 난관이었다. 방년 12세의 나는 할 줄 아는 요리라곤 스크램블 에그가 전부였다. (계란 후라이도 할 줄 몰랐다는 소리다) 그러니 뒤집게 쓰는 법이나 알았겠냐고.


두부를 뒤집다가 으깨는 건 예삿 일도 아니고 동그랑땡이며 꼬지며 계란 물이 거뭇거뭇한데 속은 익지도 않은 날것의 전을 만들어냈다. 이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라며 엄마는 웃으셨지만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그러셨을 거다. 나도 내가 답답했는데. 먹을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으니 호기롭게 주방으로 들어섰던 처음의 모습관 달리 풀이 잔뜩 죽었었다. 반대로 오기는 스멀스멀 자라났다. 뒤집개를 놓고 방으로 들어와 짱구를 열심히 굴렸다. 설, 추석, 두 번의 제사 그러니까 일 년에 총 네 번 전 부칠 기회가 있다. 올해는 벌써 방금 한 번 망쳤으니 세 번. 반드시 세 번 안에 전의 달인이 되겠다고 굳게 다짐을 했더랬다. 당시 쓰고 있던 일기에도 전의 달인이 되겠다고 적었던 것을 똑똑히 기억한다.

그래서 전의 달인이 정말로 됐냐고? 물론이다. 세 번 만은 아니고 한 열한 번째 돌아오는 명절에 달인에 등극했었던 것 같다. 엄지 손가락도 몇 번 데이고, 전을 부치랬더니 중지 손가락을 부칠 뻔하기도 하면서 어렵사리 이뤄냈다. 덕분에 지금은 엄마보다 전은 내가 더 잘 부친다고 자신한다. 언제나 크게만 생각했던 엄마보다 내가 더 잘하는 것이 생긴 첫 순간이었다.



진짜 어른(일걸?)


전만 잘 부치면 뭐해. 그때까지 나는 누군가가 차려주는 밥만 먹었었다. 내 나이 열다섯, 할아버지, 할머니, 아빠, 엄마, 나, 동생 이렇게 여섯식구에서 아빠, 엄마, 나, 동생 네 식구가 되면서 나와 동생 둘만이 집에 있는 시간이 늘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 두 분을 잃은 상실감을 처음 경험했었다. 슬픈 것도 슬픈 건데 당장 눈 앞에 있는 일부터 해결해야 했다. 늦게 퇴근하시는 부모님을 대신해 동생에게 저녁을 챙겨줘야 한다는 것. 이제 누군가가 차려주는 밥을 먹는 게 아니라, 누군가의 밥을 챙겨줘야한다는 책임감이 생겼다. 역시나 의욕은 넘쳤지만, 유감스럽게도 할 줄 아는 음식은 거기서 거기였다. 매번 전을 부쳐 밥을 먹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때 내 저녁의 구원자가 나타났다. 유튜브. 수백 수십가지의 레시피를 영상으로 설명해주니 따라하면 꽤 그럴싸한 음식이 나오곤 했다. 비록 제육볶음이나 불고기같이 양념이 쎈 음식들은 고기가 익었는지 안 익었는지 꼭 먹어봐야 알곤 했지만, 쇠 숟가락이나 젓가락으로 후라이팬을 잔뜩 긁어놔서 코팅이 다 벗겨진 후라이팬이 한 달에 하나는 너끈히 나오긴 했지만…… 맛은 정말 있었다. 나 사실 요리에 소질이 있는 게 아닐까?


다행히 동생도 내가 한 음식이 입에 맞았는지 잘 먹어주었다. 저녁을 먹여서 그런가 동생과 기껏해야 세 살차이지만 뭔가 내가 키운 내새끼 같고 그렇다. 밥 차려 주기 전까지는 머리채 잡고 싸우는 일도 허다했는데, 그 후에는 그런적이 없다. 참 많이 컸다 싶었다.



내가 열여섯이 되던 해 부모님 생신에 맞춰 미역국과 불고기를 만들어드렸을 땐 정말 어른이 된 것 같았다. 이제 부모님 대신 주방에 들어가있어도 어색하지 않고, 되려 밥상을 차려드릴 수 있게 되었으니까. 지금은 뭐 거의 쉐프다 쉐프. 야매 쉐프긴 하지만. 세상에 MSG가 있는데 안 되는 게 어딨어. 김치찌개, 된장찌개, 제육볶음 뭐 이런 자주 먹는 익숙한 반찬 정도는 눈 감고도 만들 수 있게 됐다. 요 근래에는 김장도 척척할 줄 안다.




주방은 누군가에게는 그저 끼니를 떼우는 곳, 또 다른 이에게는 하루종일 다른 사람들의 끼니를 챙겨주어야하는 곳 등등 많겠지만 거의 대부분 밥을 먹는 곳이라는 생각은 비슷할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우리 집 주방은 나를 성장하게 해 준 공간이다. 주방에서 밥을 먹고 성장했다는 의미도 있기야 하다만, 내가 처음 엄마보다 커졌던 공간, 누군가에게 책임감을 느끼고 보살펴줄 수 있게된 공간. 나 진짜 많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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