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질 것들에 대한 그리움 ​

#3. 가장 많은 일이 일어나는 곳, 넓어서 그런가?

by 폼폼



누가 수박 겉만 핥으면 아무 맛도 느낄 수 없다고 했더라. 다른 건 몰라도 우리 집 거실은 다르다. 겉으로는 창문, 화분이 가득해 온통 푸르러 이건 이것대로, 안으로는 따뜻한 가족과의 시간이 가슴을 채우는 붉은 빛이 되어 이건 이것대로. 겉이든 속이든 꽉 차있는 곳이다.



우리 집 거실의 특별한 점. 엄청 큰 창이 있다는 것이다. 한 면이 모두 큰 창으로 되어있어서 티비를 보는 것 보다 창 밖의 세상을 보는 게 꼭 영화를 보는 것 같이 느껴진다. 생각해보니 거실은 참 넓다. 집에서 화장실과 방을 제외하면 모두가 거실 공간인 셈이니까.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와도 다 즐거울 수 있고, 가족끼리만 있어도 언제나 다양한 이야기가 오갈 수 있었던 걸까?



우리 집은 마당도 마당이지만 집 안도 온갖 꽃과 나무들로 즐비하다. 쇼파 뒤에는 엄마가 키우시는 다육이들부터 제라늄, 스투키, 선인장 등 외에 이름도 모르는 나무들이 담긴 화분들이 잔뜩이다. 할머니가 시집오실 때부터 있었다는 귤나무도 있는데 거기서 열리는 열매는 노랗게 정말 예쁜 외관은 물론이고, 희한하게 향기가 엄청 좋았다. 좋은 냄새로 날 유인한 귤나무는 내게 엄청난 쓴맛을 보여주었다. 분명 식용이 맞다고 했는데, 입에 넣어보니 이건 뭐 사람 먹을 게 못 되는 거다. 이름만 식용이면 단가? 그 때 내 나이 아홉 살이었다. 일찍이 인생의 쓴 맛은 다 본 것 같았다. 보기에 좋다고 먹기도 좋은 것은 절대 아니구나…


[ 할머니의 귤나무 ]



무튼 여름에는 그 화분들을 밖으로 꺼내 주어야 했고, 겨울에는 다시 집 안으로 들여 주어야 했다. 계절별 행사 개념이라고 보면 되겠다. 각기 바쁜 우리 가족들이 하루종일 함께 일을 하는 몇 안 되는 날이기도 했다. 화분들이 겨울에 들어올 때 여름에 밖에서 좋은 볕, 공기, 비 잔뜩 머금고 그것만 들어오면 좋겠지만, 벌레도 함께 달고 들어온다. 발이 몇 개인지 셀 수도 없는 돈벌레나, 형형색색의 거미들이나 징그러운 것들을 잔뜩 데리고 들어왔다. 그래서 나는 겨울보다 여름이 좋았다. 다른 집들은 여름에 벌레가 훨씬 많아서 고생한다는데, 우리 집은 예외였다. 겨울 우리 집은, 특히 거실은 벌레들의 왕국이었다. 처음에는 징그럽다면서 손도 못 댔었는데, 중학교쯤 올라가니까 이제 돈벌레나 거미쯤은 휴지만 있다면 눈 감고도 잡을 수 있다. 하도 많이 봤더니 이제 징그러운지도 잘 모르겠다. 익숙해진다는 게 참… 놀랍다.



축축하고 차가운 건 도저히

웬만한 벌레에는 꿈쩍도 안 할만큼 강인한 면역을 가진 내가 아직도 못 잡는 것이 있는데, 개구리는 눈에 바윗덩어리가 들어가도 절대 잡을 수 없다. 때는 아직 가을이라기에는 조금 이른 아주 늦은 여름이었다. 화분을 다시 들여오기는 애매했지만, 부모님이 이번 가을엔 좀 바쁠 것 같다며 화분을 조금 일찍 들여놓으신다고 분주했다.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고 계시던 엄마가 거실에 있는 창문을 열어두라고 하셨다. 화분 옮기기의 시작이었다. 아무런 의심 없이 창을 열었다. 그 순간 손등에 닿는 축축하고 차갑고 이상한 물체. 난생 처음 느껴보는 촉감. 개구리였다.


나는 기절하는 줄 알았다. 초록색의 그 물체가 내 손등에 탁 내려앉던 순간을 생각하면 아직까지도 소름이 돋는다. 너무 놀라면 소리도 못 지른다는 게 진짜라는 걸 그 때 알았다. 여기서 또 하나의 교훈을 얻는다. 옛 말 틀린 거 하나 없다더니 진짜다. 방방 날뛰며 손을 탈탈 털고 난 뒤 주저 앉아서 울었다. 엄마가 깜짝 놀라 거품 묻은 고무장갑으로 개구리를 내쫓고, 내 손등을 다섯 번이나 씻겨주신 뒤에야 눈물이 멎었다. 끔찍한 기억이다. 난 정말이지 개구리가 정말 싫다. 생긴 것도, 축축하고 차가운 느낌은 더더욱이 싫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유체이탈을 경험했던 것 같다. 그날 샤워를 몇 번 했더라… 아마 열댓 번은 했을거다.



따뜻하고 포근한 건 언제나

그렇다고 거실에서 벌레, 개구리들과의 사투만 벌였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가장 좋은 일들도 거실에서 일어났다. 예를 들면 가족들이 모두 모여서 커다랗고 둥그런 상에 둘러 앉아 식사를 한다든가, 가장 좋아하는 사촌 동생들이 놀러와서 함께 잔다든가 하는 일들은 모두 거실에서 일어났다. 개중에서 제일 좋았던 건 가족들의 생일파티이다. 우리 가족은 할아버지, 할머니, 아빠, 엄마, 동생 그리고 나 여섯 식구가 함께 살았었다. 그러니까 일 년에 생일파티가 여섯 번이나 있었다고! 다섯 번은 내 생일도 아니면서 내가 더 들떴었다. 해가 질 때쯤 맞춰 맛있는 음식을 상다리 휘어지게 차려 두고, 엄청 큰 케이크에 저마다 준비한 선물들을 전달하는 그 시간이 정말 좋았다. 맛있는 음식이 있어서 좋았던 건지 아니면 가족들과 함께 있어서 그랬던 건지… 아마 전자의 영향이 좀 더 크지 않았을까?



우리 집은 시골에 위치해있어서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치킨, 피자 배달음식을 먹기 어려웠다. 그래서 상장을 받아간 날에 치킨이나 피자를 먹을 수 있었는데 그게 그렇게 좋았다. 상장을 받아들고 숨 차게 달려서 현관을 열고 들어가 거실에서부터 ‘치킨!!!!!!!!!!!!!!!!!!!!!!!’하고 외쳤었던 게 생각이 난다. 난 이제 그때부터 치킨 먹을 생각에 그날 밤이 그렇게 기대될 수가 없었다. 집에 주로 계시던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활짝 웃으시며 저녁 준비 안 해도 되겠다고 말씀하시던 게 아직도 가끔 생생하다. 저녁에 거실에서 가족 모두가 함께 먹는 반반 치킨. 그 맛이 얼마나 뿌듯하던지. 지금은 매일 치킨을 먹어도 그때만큼 맛있지는 않다. 치킨의 영향이었는지는 몰라도 초등학교 때 내 상장은 두꺼운 파일철 두 개를 채울 정도였다. 치킨은 상장을 날아오게 하나보다.



앞서 말했던 치킨을 먹었던 일이나 생일파티와 다르게 특별한 일이 아니더라도 추억할 거리는 가득하다. 현관을 열고 들어오면 훅 끼쳐오는 그 집만의 냄새가 있다. 향기라고 해야 더 맞는 소리일까? 우리 집 냄새는 포근한 빨래 말린 냄새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주택의 특성상 베란다가 따로 없어서 거실에 빨랫대를 두고 빨래를 말리는데, 그것 때문인듯 싶다. 그 빨래 냄새라든가. 저녁 식사 후에 둘러 앉아 사과를 먹으며 아내의 유혹을 챙겨 봤었던 일이라든가. 소파에 다들 퍼져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함께 낮잠을 잤던 일도, 밭에서 막 캐온 고구마나 옥수수를 쪄서 먹다가 뜨거워서 입 천장이 다 까졌던 일도. 다 적고 보니 거실에서 좋았던 기억은 모두 가족들과 함께 있었을 때 일어났다. 거실이 각자의 공간인 방에서 나와 함께 웃고 떠들고 좋아하는 것들을 공유하게 해 준 소중한 공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대화소리로 가득 차있던 그곳을 절대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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