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녀라는 이유로 대부분 더 크고 좋은 것을 가질 수 있었다. 방 세 개 중 두 번째로 큰 방은 항상 내 차지였고 용돈도 늘 더 받았다. 이런 불합리한 상황 속에서도 동생은 딱히 불만이 없었다. 위계질서가 분명한 집안의 분위기 탓인지, 생각보다 착한 동생의 성격 덕분이었는지 우리는 역시 '자매'가 좋다며 입을 모았다.
나와 동생의 가장 큰 공통점은 부모님이 같다는 정도이다. 그만큼 우리는 다르지만 난 여전히 내 절친한 친구 중 한 명은 동생이라고 말한다.
나는 91년생, 동생은 96년생.
5살 터울의 우리 자매는 묘하게 균형이 맞는다. 관계에 균형이 맞는다는 것은 두 가지 경우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우리는 각자 극단에 서 있지만 어떤 사건을 마주했을 때 더 잘하는 사람이 앞서 이끈다. 함께 즐길 수 있는 상황을 만들기 위해 양보와 타협을 활용한다. 서로의 장점을 활용하고 인정하는 자세가 우리 사이의 균형추로 작동하는 것이다. 쉽게 들뜨고 감동하는 날 위해 동생은 현실적인 계획을 세운다. 절대 햇빛과 바람을 쐬지 않겠다는 신념으로 소파에 붙어있는 동생을 위해 난 산책과 외식을 제안한다. 나는 요리도 대충, 청소도 대충. 동생은 시작하면 끝을 본다.
여수에서 나와 동생
한 달간의 유럽 배낭여행
2015년2월. 우린 한 달간의 유럽 여행을 떠났다. 손을 벌리기 싫어하는 동생은 아르바이트와 저축을 통해 여행 비용을 마련했다. 난 퇴사한 후 돈을 홀랑 써버리는 바람에 결국 아빠에게 용돈을 뜯어내 경비를 충당했다. 숙소, 교통수단 등 여행에 필요한 모든 계획은 우리 자매의 손으로 짰다. 프랑스, 스위스, 오스트리아, 체코, 이탈리아 순으로 총 5개국을 다녔으며 나라마다 우리만 아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써나갔다. 우리 자매의 장점을 있는 대로 써먹었던 한 달이었다. 체격이 비슷해서 속옷을 제외한 모든 것을공유했다. 길 찾기, 요리, 외국인에게 말 걸기와 같이 힘이 들고 부담이 되는 일들은 나라를 이동할 때마다 차례로 분담했다. 한 달 동안 큰 갈등도 없었는데 평소 서로를 의식하고 신경 쓰지만 그저 지켜보고 함께 있는 것에 믿음을 느끼는 우리 자매의 문화가 한몫한 것 같다. 내가 다시 한번 떠나자는 제안을 한다면? 동생은 분명 특유의 뚱하고 뾰로통한 얼굴로 "그래서 언제?"라고 물어볼 것이다.
한라산 등반에 성공하다.
2023년에 하고 싶은 일을 잔뜩 써놓았지만 혼자 움직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럴 때는 '동생 찬스'를 쓰면 된다. 내가 하자고 하면 결국 승낙할 사람이 바로 내 옆에 있다. 나의 올해 목표 중 '한라산 정상 정복하기'를 너와 함께 하겠다고 동생에게 통보했다. 역시 그녀의 대답은 "그래서 언제?"
회사에 휴가를 신청했고 분에 넘치는 등산화를 샀다. 서로의 등산 실력을 알아보기 위해 한 차례 산을 올랐고 동생은 겁을 먹었다. '될 대로 되라.'는 식의 나다운 위로를 건넸지만 역시 동생에게 통하지 않았다. 결국 우리는 휴식 시간을 포함해 9시간 30분 만에 정상을 찍고 왔다. 꽤 괜찮은 기록이었다. 특히 이슬비를 맞으며 말없이 하산했던 3시간이 떠오른다. 할 말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말을 할 수 없었다. 떨어뜨린 초콜릿 포장 껍질조차 줍기 버거웠다. 한라산 등반 인증서를 출력하며 서로의 끈기와 우리의 위대함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흑돼지를 먹어 치우며 머리카락부터 발톱까지 힘을 써줬던 우리 몸에 감사하며 살기로 했다.
난 언니 체질, 넌 동생 체질.
동생이 아닌 언니로 살아보고 싶지 않냐는 물음에 동생은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언니가 아닌 동생으로 살아보고 싶지 않냐는 동생의 물음에 2초 정도 고민하다 "난 지금이 좋다."고 말했다. 동생은 언니가 짊어지는 책임감이 싫다고 했다. 동생이 대부분 내가 더 좋은것을 가져도 화내지 않는 이유가 이해됐다. 물질적인 것을 조금 손해 보더라도 가족의 관심과 스트레스를 덜 받는 막내의 위치에 만족하고 있었다. 난 내가 언니인 것이 마음에 든다. 장녀로서 중압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견딜만한 무게이다. 사실 우리 가족이 나에게 큰 기대가 없기도 하다. 날 있는 그대로 보고 사랑한다는 이야기다. 때로는 그 믿음에 반하는 행동을 하여 부모님 마음에 상처를 내기도 하지만 결국 자식인 나는 용서받는다. 그래도 동생은 언니로 태어나기 싫단다. 우리 자매 둘 다 각자의 역할에 힘들이지 않고 만족하는 것을 보니 난 언니 체질, 동생은 막내 체질인 것 같다.
타고난 여러 가지 복을 자랑하는 대회가 있다면 부모복, 형제복을 한아름 안고 출전할 것이다. 우리 부모님의 존재는 감사 그 자체이며 날 언니로 만들어 준 동생은 더없이 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