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발견의 힘

다르게 보면, 다른 쓰임이 보인다

by 김글리

재발견.

사전을 보면 재발견은 '잊히거나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의 가치를 다시 발견하고 인정하는 것'이라고 나온다. 나는 이 의미를 칠레의 한 바닷가에서 확실히 이해했다.


미역 랩소디


2013년, 나는 세계를 한창 여행하던 중이었다. 칠레에서 국민시인으로 추앙받는 '파블로 네루다'의 집을 찾았다가, 바로 근처 바닷가에 들렀다. 해변 한 귀퉁이에 미역더미가 한가득 쌓여있었다. 아무도 먹지 않는터라, 미역은 아무 쓸모없이 쓰레기처럼 버려져 있었다. 나는 2미터 넘게 치렁 치렁한 검은 미역을 보다가, 문득 미역이 가발 같다는 생각을 했다. 구불구불한 미역줄기가, 내 눈엔 레게머리처럼 보였다. 바다가 만들어준 레게머리.

그때 재밌는 생각이 떠올랐다.


저걸 머리에 뒤집어쓰면 어떨까?

짜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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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되었다. ㅎㅎ

미역이 레게머리로 다시 탄생했다!

미역을 뒤집어 쓴 나를 보더니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낄낄 거리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오, 반응 좋은데?

같이 간 친구들도 나처럼 미역을 뒤집어 쓰고 사진을 찍었다. 그게 재밌어 보였던지, 다른 사람들도 오더니 돌아가며 미역을 뒤집어 쓰기 시작했다. 우리는 레게머리 미역을 뒤집어 쓴 서로의 모습에 깔깔대며, 사진 찍고 놀았다. 쓰레기였던 미역이 레게머리로 둔갑해 준 덕에, 한나절 재밌게 놀 수 있었다.


나는 ‘쓸모없음’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흔히들 '쓰레기'는 쓸모없어서 버려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사실은 우리가 더 이상 쓸모를 찾지 못한 게 아닐까?


쓰레기로만 예술작품을 만들어 팔아서 그 돈으로 세계여행을 하던 친구도 있었고, 다 먹은 요구르트병을 모아서 악기로 쓰던 공연팀도 있었고, 버려진 현수막으로 가방을 만들어 파는 사회적 기업도 있었다. 또 녹차를 우린 뒤 버려지는 녹차잎을 모아, 볶아서 반찬으로 해 드시던 할머니도 계셨다. 그들은 쓸모가 다했다고 생각되던 것들에 또 다른 쓸모를 발견했고, 다시 생명을 불어넣었다. '쓸모없음과 쓸모 있음'을 만드는 건, 보는 시선의 차이가 아닐까?? 그러니 쓸모가 없다는 건, 무용한 것이 아니라, 아직 그 쓸모를 찾지 못한 것뿐이다. 이 세상에 쓸모없는 건 없다. 다만 그렇게 보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시선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많은 게 바뀌지 않을까??


중요한 건 사실이 아니라 사실을 해석하는 관점


두 남자가 바에서 만나기로 했다. 한 남자가 들어가다가 꽃 파는 할머니를 만난다. 할머니는 아픈 손녀가 있으니 꽃 하나 사 달라고 한다. 남자는 할머니에게 돈을 주고 바에 들어갔다. 그걸 본 다른 친구가 이렇게 말한다.

"야, 너 사기당한 거야. 저 할머니 아픈 손녀도 없어." 그러자 남자가 활짝 웃으며 말한다.

"아 다행이다. 아픈 손녀가 있으면 더 걱정했을 건데, 걱정 하나 덜었네." 그러면서 건배하자고 한다.

같은 거짓말인데도, 이를 대하는 두 남자의 태도가 다르다. 한 사람은 아픈 손녀가 있다는 말을 속아넘어가선 안될 거짓말로, 다른 한 사람은 아픈 손녀가 있다는 게 거짓말이라는 데 안도한다. 이는 2007년 칸 국제광고제 은상 수상작인 조니블랙 워커 위스키 광고에 나오는 이야기다.

[관련 영상 클릭: 깊은 마음을 가진 남자를 이야기하다]


'사실'만큼 중요한 건, 그것을 해석하는 '관점'이다. 사실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길 한가운데 돌이 하나 있다. 어떤 사람은 그 돌을 디딤돌이라고 생각하고, 어떤 사람은 걸림돌로 본다. 돌은 그냥 거기 있는 거다. 그런데 사람마다 해석이 다르다. 뉴욕의 한 쇼핑몰을 갔는데, 몇 시간 동안 돌아다니며 보다 보니 각 매장의 직원들마다 보는 시선이 달랐다. 화장품 파는 직원은 가장 먼저 사람들의 피부를 보았고, 헤어기구를 파는 직원은 사람들의 머리 모양을 보았고, 액세서리 파는 직원은 사람들의 치장을 보았다. 같은 사람을 보는데도, 직업에 따라 보는 시선이 이렇게 달라지는구나.


그런데 스스로를 관점 디자이너라고 부르는 재밌는 남자를 발견했다. 박용후 씨라고, 사실 엄청나게 유명한 홍보 전문가이다. 그는 카카오톡 홍보이사를 하면서, 카카오톡을 전 국민의 메신저로 만들어놓았다. 그밖에도 많은 곳에서 홍보자문가로 활동하며, 사람들의 관점을 바꾸는 일을 하고 있다. 몇 달 전, 운 좋게도 그의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그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자기 직업을 어떻게 정의 내리기에 따라 모든 관점이 완전히 바뀌는 거 아세요? 똑같은 일을 하는데, 어떤 사람은 자기를 헤어디자이너, 미장원 주인, 머리 하는 사람 등 다르게 표현합니다. 같은 일을 해도, 관점에 따라 다르게 일해요. 태도가 달라집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을 "나는 관점을 디자인하는 사람입니다."라고 표현했다.


박용후 씨에 따르면 중요한 건 단어가 아니라, 단어에 대한 정의다. 한 예로 3M 회사는 '고객의 짜증'을 단순한 불평 불만이 아니라, '우리가 못 본 서비스의 구멍'이라고 정의했다. 그래서 수세미가 너무 네모져서 쓰기가 불편하다는 한 고객의 짜증을 듣고, 수세미를 가운데가 움푹 들어가게 모양을 바꾸었고 이는 대 히트를 쳤다. 아, 어떻게 정의 내리는 가가, 방향성을 주는 거구나! 그는 깨달았다고 했다. 관점이 바뀌면, 정의가 바뀐다. 그는 다른 방향으로 가고 싶으면, 정의를 바꾸라고 한다. 정의를 바꾸기 위해선 보는 관점을 바꿔야 한다. 관점이 바뀌면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한다고.


멀리 갈 것도 없었다. 16개월 간 세계를 돌아다니며, 당장 나에 대한 시선들이 달라지는 걸 몸소 체험했다.

한국에서는 나는 언제나 키가 크고, 골격 큰 여자였다. 사람들은 나의 큰 키와 수영선수로 오해받을 만큼 넓은 어깨에 주목했다. 정말 지겨울 만큼 사람들이 내게 묻곤 했다.

"어머, 운동하셨나 봐요. 종목이…?"

"왜 이렇게 커요?"

"왜 이렇게 어깨가 넓어? 너 운동하니?"

나의 큰 키와 잘 발달된 몸은 그건 그렇게 자랑할만한, 아름다움은 아니었다. 하지만 외국에 가니 나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달랐다.


하루는 이스탄불의 숙소에 있는데 세르비안가 어디에서 왔다는 아저씨가 날 보더니 대뜸 이렇게 말했다.

"동양인들은다 작던데 넌 크구나, 다르구나.”

그는 내가 왜 이렇게 키가 큰지 이상하다는 듯 묻지 않고, '아 넌 크구나' 하고 날 그냥 받아들여주었다. 그래서 기분이 좋았다. "맞아, 난 참 다르지.” 다르다는 것, 한국에선 그점 때문에 언제나 외로웠는데, 나와보니 별게 아니었다. 네덜란드에서 온 친구는 나를 그들과 '같은' 골격을 가진, 아주 평균적인 신장의 사람으로 보았다. (참고로 네덜란드는 남자 평균 키 180cm, 여자 평균 키가 175cm 정도라 한다.) 사람들은 한 번도 주목해보지 않았던 나의 특징들을 보고 아름답다고, 뭔가 다르다고 말해주었다. 네 눈이 아름다워. 입술이 예뻐, 치아가 예뻐, 웃는 게 아름다워. 검고 긴 머리가 정말 잘 어울려. 키가 커서 좋아. 심지어 귀가 커서 예쁘단 말도 들었다. 나는 그때 알았다. 같은 사람을 보는 시선이 이렇게 다양할 수 있다는 걸. 그 시선에 따라 나는 평범한 사람, 아름다운 사람, 혹은 너무 큰 사람 등이 되고 있었다.



"다르게 보는 거야, 그럼 다른 게 보여"


2012년 제주 올레길을 걸으며 받은 충격을 잊지 못한다.


당시 나는 제주도 올레길을 일주일 계획으로 걷고 있었다. 십 년 만에 다시 찾은 제주도는 분위기가 많이 바뀌어 있었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제주도는 한 물간 여행지였다. 가끔 자전거나, 오토바이로 일주하는 젊은이들이나, 해외에 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분위기 내려고 찾는 그런 곳이었다. 그런데 '올레길'로 급격히 뜨더니, 제주도를 찾는 사람들이 달라졌다. 혼자도 오고 그룹으로도 오고, 은퇴하고도 오고, 대학생도 오고, 고등학생도 오고, 주부도 오고, 환자도 오고… 아주 다양한 사람들이, 아이부터 노인까지 모든 연령대의 사람들이 왔다. 한때는 신혼여행객들이, 한때는 레저를 즐기는 젊은이들이 찾던 제주도에 이제는 자신의 삶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오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제주를 보면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70~80, 아니 90년대까지만 해도 제주도는 신혼여행지로 각광받는 곳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신혼여행지로 찾았다. 그 후, 많은 사람들이 신혼여행을 해외로 떠나면서 제주도는 한물 간 여행지가 되었다. 이제 제주도는 새로운 대안장소, 새로운 속도를 가진 삶의 장소, 다양한 인생 실험이 행해지고 있는 곳이 되었다. 분명 같은 제주인데, 보는 관점이 달라지면서 신혼여행지, 스포츠 레저 관광지에서 삶의 대안을 찾는 곳으로까지 완전히 새로운 쓰임을 가지게 되었다. 보는 관점이 달라지면 쓰임이 이렇게 달라지는구나. 아주 강력하게 한방 얻어맞았다.


중요한 건 사실이 아니라 사실을 해석하는 관점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다시 보는 것에 집중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해보았다.

만약 나를 다시 본다면, 나를 다른 관점에서 보게 된다면, 내 인생을 새롭게 보게 된다면

나도 제주도처럼 새로운 쓰임, 다른 쓰임을 찾을 수 있을까??


어느 것 하나도 당연한 것은 없고, 어느 것 하나 쓸모없는 건 없다. 다만 그렇게 보는 시선이 있을 뿐이다. 이제 이어질 '재발견 시리즈'는 직업, 꿈, 욕망, 선택, 아름다움, 질문, 삶의 방식 등 여러 분야에 대해 기존과는 '조금 다른 시선'으로 보는 작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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