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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글리 May 29. 2017

자발적 굶주림을 시작하다

헝거게임의 의미

끊을 단(斷), 밥 식(食). 단식은 자발적으로 일정기간동안 '밥을 끊는' 행위로 다이어트나, 의료, 정치투쟁, 종교적인 목적으로 다양하게 쓰인다.  


나는 2006년부터 1년에 한 두 번씩 단식을 해왔다. 한 번 하면, 3일에서 길게는 일주일도 한다. 단식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도 많은데, 나는 단식을 통해 몸을 바꿔본 경험이 있어서 단식의 효과를 믿고 있다. 그래서 내가 경험한 단식을 좀 써볼까 한다.  


몸을 바꾸는 단식


처음 단식을 접한 건 2006년이었다. 어릴 때부터 위가 안좋아 자주 체했고, 사춘기때 생긴 스트레스성 폭식 증세로 위가 더욱 좋지 않았다. 역류성 식도염도 있었다. 


나는 몸을 바꿔보고 싶은 열망에 단식을 하기로 결심하고,  단식을 시작했다. 단식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생수단식, 효소단식, 장국단식, 포도단식 등이다. 나는 하루에 포도 한송이씩 먹으면서 하는 초절식인 '포도단식'을 선택했다. 미리 해본 분에게 조언도 구하고, 책도 찾아보며 어떻게 하는지 열심히 공부를 했다. 


단식은 잘못 하다간 오히려 건강을 해칠 수 있기 때문에 무작정 하면 해가 될 수 있다. 단식을 하면 신체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기초지식이 있어야 하고, 단식 중에도 가벼운 운동과 물 마시기, 관장 등 해야할 것들이 무엇인지 알아 두어야 할게 많다. 초보자라면 1일~3일이라면 혼자 집에서도 할만하지만, 5일 이상이 넘으면 전문가가 필요하다. 


단식은 보통 굶는 것만 생각하지만, 크게 3단계가 있다.  

먹는 것을 줄이는 '감식'과 본격적으로 굶는 '본단식', 단식 이후 몸을 천천히 정상으로 돌리는 '보식' 이다.

단식이 가장 어려울 거라고 생각하지만, 실은 그보다 어려운 게 '보식'이다. 굶는 건 몇 번의 고비를 넘기면 익숙해져서 아예 안 먹는게 편해지지만, 막상 음식이 다시 몸에 들어가기 시작하면 식욕이 발동한다. 먹는 것과 양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천천히 조절해가야 하는데, 이게 정말 쉽지 않다. 그래서 보식을 제대로 못해 단식을 망치는 경우가 많다. 

 

2006년 당시,  2주는 혼자 집에서 했고, 2주는 전문기관에 가서 해서, 총 31일동안 단식을 했다. 

단식기간 중에는 하루에 5번씩, 한번에 포도 10알을 먹었고 관장을 매일 해주었다. 단식은 비우는 작업이라 관장하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관장은 쉽게 말하면 몸에 레몬즙이나 물 혹은 약품을 이용해 장에 있는 것을 빼낸다.

보식기간 중에는 채식과 잡곡 위주로 조금씩 꼭꼭 씹어먹었다. '보식은 곧 단식'과 같다고 할 정도로 매우 중요하다. 보식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도로나무아미타불이 될 수 있다. 나는 단식을 한달동안 했기 때문에 같은 기간으로 보식을 했다. 이때는 인스턴트 식품을 일절 먹지 않았는데, 껌도 씹지 않았다. 

 

덕분에 살도 많이 빠졌는데, 더 좋았던 건 고질적인 위장병을 싹 나은 거였다. 


덧붙여_명현현상이란

단식을 하면 몸의 안 좋은 부분이 더 안 좋아지는 '명현현상'이 일어나게 된다. 명현반응은 인체가 몸안의 독소를 처리하면서 나타나는 증상으로 평소에 좋지 않은 부위가 더 안 좋아지게 된다. 보통 단식을 하면 3일째부터 두통, 속 쓰림, 구취, 설태, 발열, 저혈당, 두드러기 등의 명현반응이 나타나는데, 이는 몸의 독소가 배출되는 과정으로 걱정할 필요가 없다. 예로부터  “약이 명현하지 않으면 병이 낫지 않는다”고 하여,  동서양을 막론하고 명의들은 병이 낫기 전에 병이 도지는 현상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서양의 자연의학에서는 이를 일컬어 “치유의 위기”(healing crisis)라고도 한다. 

명현현상은 대체로 위와 같은 증상이 나타난다. (이미지 출처 : http://blog.koreadaily.com)

나는 단식 막바지에 명치쪽이 시커멓게 변하더니, 한달 동안 지속되었다. 그러다 차츰 사라졌는데, 그 이후로 체하거나 배 앓이를 하는 일이 없어졌다. 수 많은 한약을 먹고 병원을 다녀봤지만 낳지 않던 배앓이와 체하는 증상이 싹 사라져서, 정말 신기했다. 


이처럼 단식을 제대로 하면 살만 빼는 게 아니라 몸을 살리는 아주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연구에 따르면  사람이 가장 많은 에너지를 쓰는 게 성욕이고, 그 다음이 식욕이라고 한다. 실제로 먹는 과정과 먹는 걸 소화시키는데는 실로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들어간다. 단식은 그 과정을 잠시 끊어서, 쉼없이 돌아가던 몸의 기관을 쉬게 해주고  대사과정에 쓰던 에너지를 비축하도록 한다. 이 에너지로 우리 몸은 약한 부분을 스스로를 치유하게 된다.   공복을 오래 유지하면 우리 몸에서는 시트루인(Sitruin)이라는물질이 나오는데 이 물질은 피부, 장기 재생을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동물들도 자기 몸에 이상이 생기면 본능적으로 굶는다. 먹는 걸 끊어 몸을 쉬게 하면서 자연적으로 회복되도록 하는 것이다. 몸 안에는 최고의 의사가 있다. 



비우는 즐거움이 이거구나!


며칠 전 올해 첫번째 단식을 시작했다. 역시 완전단식은 아니고 하루에 5번 효소 20~30ml를 물과 함께 마시면서 하는 효소단식이다. 먹을 수 있는 건 효소와 물 뿐이다. 7일 단식- 7일 보식- 7일 조절식으로 진행된다. 오늘이 7일째로 마지막이다. 그동안 인이 박혔는지, 여지껏 한 단 식 중, 가장 힘이 들지 않았다. 


사실 예전에 단식할 때 '매우' 힘들었다. 식욕과 싸워야 했고, 배고픔과도 싸워야 했고, 기력이 딸려서 의욕도 함께 없어지곤 했다. 단식 후 보식할 때가 되면 식욕이 왕성해져서 도루묵이 될 때도 많았다. 내게 단식은 잘해보고 싶지만 늘 '애를 써야만 하는 거였다. 


그런데 처음으로 몸을 비우는 즐거움이 무엇인지 느꼈다. 이틀을 굶고 공복 상태로 잠자리에 들었는데, 그 공복감이 얼마나 좋았던지 날아갈 것만 같았다. 그 상쾌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았다. 단식 10년 만에 처음으로 '비우는 기쁨'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배고플 때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도 기쁨이지만, 몸을 비워내는 것도 기쁨이라는 걸 알게 되면서 단식이 힘들지가 않았다. 나이가 들면서 좋은 것 하나는, 예전엔 몰랐던 즐거움을 하나 둘 발견 하는 것이다. ^^


이번 단식은 일주일이 목표다. (이제 하루 남았다.^^)

보식을 잘 해내서, 건강한 입맛을 유지하고 맑은 피 맑은 피부를 유지하는 게 목표.

그리고 이 '비움'의 상쾌함을 평소에도 자주 느끼고 싶다.  



덧붙여_단식의 또 다른 쓰임

몸을 비우는 것 외에, 최근 단식을 하는 것에 또 다른 의미가 더해졌다. 


올해 아흔 셋 되신 할머니가 부쩍 기력이 약해지셨다. 병원에 계신 할머니를 간호하면서 나는 인간의 몸은 결국은 늙고 스러질 수 밖에 없다는 걸 뼈저리게 절감했다. 언젠가 나도 늙고 죽게 될텐데, '어떻게 죽어야 할까' 진지하게 생각했다. 그러다 까맣게 잊고 있던 스코트 니어링을 디시 떠올리게 되었다. 

스콧 니어링의 말년 모습

스콧 니어링 (Scott Nearing) 은 미국의 사회개혁가이자, 왕성한 저술과 강연으로 존경받는 교수였다. 그러나 자본주의에 대항하고 반전 운동을 벌여 당시 주류 사회에서 배척당하고 있었다. 그래서 자신이 대안으로 주장하는 '생태적 자치사회'를 몸소 실천하기 위해 버몬트의 시골 농가로 들어가 농사짓고 살기 시작한다. 


자연과 더불어 매우 검소하고 절제된 삶을 살던 스콧은 100세가 되자, 이제 떠날 때가 되었다며 곡기를 끊고 단식을 한다. 그가 죽음을 맞이하는 방식이었다. 이 이야기는 그의 부인인 헬렌 니어링이 쓴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에 잘 묘사돼있다. 


1983년 8월 24일 아침 나는 그이의 침상에 같이 있으면서 조용히 그이가 가는 것을 지켜보았다.나는 반쯤 소리내어 옛 아메리카 토착민들의 노래를 읊조렸다.

“나무처럼 높이 걸러라.산처럼 강하게 살아라.봄바람처럼 부드러워라.네 심장에 여름날의 온기를 간직하라.그러면 위대한 혼이 언제나 너와 함께 하리라.”

나는 그이에게 중얼거렸다.”여보,이제 무엇이든 붙잡고 있을 필요가 없어요.몸이 가도록 두어요.썰물처럼 가세요.같이 흐르세요.당신은 훌륭한 삶을 살았어요.당신 몫을 다했구요. 새로운 삶으로 들어가세요.빛으로 나아가세요.사랑이 당신과 함께 가요.여기 있는 것은 모두 잘 있어요.”
-<위의 책> ,229쪽

당시 십대 였던 나는 스콧이 스스로 곡기를 끊고 한달 간 죽음을 맞이하며 보여준 의연함과 그의 태도에 매우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처럼 깔끔하게, 주도적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걸 보지 못했다. 내가 단식에 처음으로 관심을 가지게 되었던 것도, 스콧 니어링 때문이었다. 


얼마 전 결심했다.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지 않는다면, 나도 스콧 니어링처럼 생을 마감하고 싶다'고.

건강하게 살다가 살만큼 살았다고 느꼈을 때, 그러고도 조금의 힘이 남았을 때 단식을 하면서 이 세상과 작별하고 싶다. 그 기회를 누리기 위해 단식을 한다.

단식은 그래서  '죽는 연습'이기도 하다.   

잘 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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